소위 현대 예술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감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을까?’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걸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기 마련이다. 언어에서도 ‘그린다’는 것은 ‘~을 그린다’라고 표현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현대 예술 작품에서 그 ‘무엇’을 찾으려 한다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현대 예술은 그림 밖의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 그림이 과연 존재할까?
작품이 나타내는 ‘무엇’을 정보라고 한다면 이 정보는 ‘의미 정보’와 ‘미적 정보’로 나눌 수 있다. 풍경화가 있다고 할 때 ‘의미 정보’란 이 작품 속의 그림이 집, 꽃, 나무 등 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의미 정보’는 고전 회화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종교적 사건 등을 그린 고전 회화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어떤 장면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재현을 포기한 현대 예술에서는 내용이나 주제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난해하다고 느낄만한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 바넷뉴먼 (가로:305cm, 세로:259cm)
위의 작품은 ‘바넷 뉴먼’의 작품 ‘단일성6’ 시리즈 중 하나이다. 바넷 뉴먼은 그림에서 특정 대상을 재현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인지 비교할 만한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형태와 색채가 지닌 아름다움을 느끼면 된다.
이 작품은 바넷 뉴먼의 그림 사상 최고가 추상화로, 경매에서 4380만 달러(한화 약 487억 원)에 낙찰되었다. 파랑색 바탕에 선 하나 그려져 있는 그림이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상식적으론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색채와 형태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 즉 미적 정보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사람만이 이 작품의 가치를 알고,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처럼 ‘미적 정보’란 색과 형태라는 형식 요소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말한다. 형태가 무엇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어야만 아름답다는 것은 현대미술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색 자체의 아름다움과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면 기존의 ‘의미 정보’로 작품을 감상하던 기준에서 바라보던 ‘난해함’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에서 진중권은 ‘이제 현대 예술을 보고 “저게 뭘 그린거냐”고 물으면 실례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재현을 포기한 현대 예술은 재현 대상을 가리키는 ‘기호’가 아니다. 기호의 성격을 잃은 작품은 논리적으로 일상적 사물과 구별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object)이 된다. 진중권은 여기서 현대 예술의 ‘오브제화(化)’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오브제’란 예술에 일상적 사물을 그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오브제화'의 한 예로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침대>라는 작품은 침대를 그리지 않고, 실제 침대에 페인트칠을 해서 벽에 걸어 놓은 것이다.

▲ 라우션버그, <침대>, 1955
오브제화를 기호학적으로 설명하면 논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지시’라는 현상과도 연관 된다. 예를 들어 작가가 그릇에 담긴 사과를 그린다고 하자. 애초에 그릇에 담긴 사과는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 순수한 물질이다. 그러나 이 사과가 그림에 그려지고 나면 그 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다. 그 것은 벌써 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그림은 다시 현실 속의 대상인 사과를 가리킨다. 사과는 자신을 부정해서 그림이 되고, 이 그림은 다시 자신을 부정해서 현실의 사과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가리키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사물이 예술작품이 되고, 이 예술작품은 다시 사물을 가리키는 것, 즉 자기를 가리키는 사물이 바로 현대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의 ‘오브제화’는 예술에 일상적 사물을 끌어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 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회화를 기호학적 절차로 설명하면 (사과->그림->대상)이 된다. 그러나 위의 ‘바넷 뉴먼’의 그림이 그러했듯이 현대 예술작품은 가리키는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 가리키는게 있다면 오직 그림 자기 자신뿐이다. 이를 기호학적 절차로 나타내면 (사과->그림->사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작품을 보고,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다 하여 좌절하거나, 이해한척 그 작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색과 형태 배열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미적 정보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2003, pp. 35-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