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1887년 7월 28일 ~ 1968년 10월 2일)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그의 작품은 아방가르드 미술을 자처하는 곳에서 조차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언제나 시대를 앞서나가는 예술가들이 겪는 고초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가 새롭게 제시한 미의 개념은 당시의 미술계 보다 두 발짝 더 앞서 나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예술사에 미친 영향력의 범위는 넓다. 동시대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뿐만 아니라 팝아트 등에 영감을 주었다.
▲ 마르셀 뒤샹 (1887년 7월 28일 ~ 1968년 10월 2일)
▲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1
(골절된 인물의 누드처럼 보여,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뒤샹의 작품)
한 때 ‘미술계의 문제아’로 거론될 만큼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왔기 때문일까 뒤샹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는데, 결국 그가 찾은 정체성은 ‘여성’이었다.
예술사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의 작품 중에서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작품을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 마르셀 뒤샹, L.H.O.O.Q.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복제사진에 연필로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 넣어 ‘수정된’ 레디 메이드를 만들었다. ‘레디 메이드(Ready-made)’란 사전적 의미로는 기성품을 뜻한다. 뒤샹은 이를 미술 개념으로 확장 시켰는데, 그가 말하는 ‘레디 메이드’란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성품이 예술가에 의해 본래의 용도와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L.H.O.O.Q.' 라고 적혀있다. 언뜻 보면 약자 같기도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글자는 불어로 '엘.아슈.오.오.뀌.'로 발음되는데, 연독하여 발음하면 마치 불어 문장 'Elle a chaud au cul' 처럼 들린다. 이 문장을 해석해 보면 “그녀는 엉덩이가 달아올랐다”(elle a chaud au cul) 라는 성적인 뜻이 된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미소로 불리며 사랑을 받는 <모나리자>에 장난스럽게 수염을 그려 남성으로 묘사한 것에 더하여 성적인 암시가 담긴 제목까지 붙여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이 남성이 되고, 명화(名畵)가 수염 하나로 인해 우스꽝스럽고 가벼워 보이게 하여 고전 미술에 대한 신성화와 같은 선입관을 부정하고 있다.
뒤샹이 왜 하필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남성으로 표현했을까?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자로 태어나 5살 때까지 어머니와 살다가 그 뒤로는 아버지의 집에서 새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새어머니는 다빈치에게 생모 못지않은 사랑을 주었다. ‘프로이드’가 발표한 논문에서 의하면 여기서 형성된 지나친 유대로 인해 다빈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동성애의 성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뒤샹이 기존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시각을 부정하려는 의도만으로 <모나리자>를 차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성적인 정체성을 고민했던 그의 생각 또한 암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로즈셀라비가 된 뒤샹
또 다른 언어 유희적 작품으로 <로즈 셀라비>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920년에 뒤샹이 여자로 분장한 모습을 ‘만 레이’가 찍은 것이다. 뒤샹은 ‘만 레이’의 카메라 앞에서 ‘로즈 셀라비’라는 여자로 분장하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뒤샹은 과장된 몸짓으로 여성 흉내를 낸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입체주의 그룹에서 탈퇴한 후, 뒤샹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카톨릭 신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유태인의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지만, '여성이 되는 것'이 훨씬 더 극적일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지은 가명이 '로즈 셀라비(Rrose Selavy)이다. 뒤샹은 여성의 가명을 사용함으로써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나,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토록 좋아했던 동음이어의 말장난도 즐길 수 있었다. '로즈 셀라비'라는 이 이름은 '사랑,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뜻의 프랑스 말인 '에로스, 세 라 비(Eros, c'est la vie)'나 '삶을 위해 건배를'이라는 뜻의 '아로제 라 비(Arroser la vie)'로도 들린다.
뒤샹은 ‘로즈 셀라비’를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몇몇 작품에는 그 이름으로 서명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취향이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내 자신을 부정하고자 애썼다."
그는 여성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남성이기를 포기했던 것 같지는 않다. 성(性)적 정체성을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변경하거나 선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여성을 이중적 자아로 생각했다는 점은 그가 기존의 미적 개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두었듯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남성'이라는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또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 뒤샹, L.L.O.O.Q
* 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2001
* 도병훈, 미술의 경계를 넘은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 , 2008
* 진중권,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게이 미학에 관하여, 씨네21, 2012-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