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 적의 사과 (Enemy's Apple, 2007)

글 입력 2015.01.0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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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사과 (Enemy's Apple, 2007)

감독- 이수진

21분/ 드라마,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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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줄기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여름날의 정오. 시위가 한창이다. 이때, 막다른 골목에 두 명의 남자가 대치하고 있다. 투쟁의 상징인양 촌스러운 빨간 손수건을 목에 두른 한 남자와 한 명의 전투경찰이. 남자는 당장에라도 뻥 뚫린 맨홀로 전투경찰의 하이바를 떨어트릴 태세. 전투경찰 역시 날 선 수비용 방패를 든 채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언제라도 그를 찍어 내릴 기세다.


누구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들은 땡볕 밑에서 쏟아지는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반나절 간의 팽팽한 대치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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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둘은 난생처음 본 사이다. 하지만 이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반대편에 선 이를 적으로 규정할 것을 종용한다. 싸움은 규정된다. 하지만 실상, 복장을 지우고 보면 이들은 한 없이 평범한 이들에 불과하다. 전투경찰은 이 시위가 무엇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 투입된 입대 4개월 차의 어수룩한 신병일 뿐이며, 시위 중인 남자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간첩도, 대단한 혁명가도 아니다. 그저 병원에서 정리해고 당해 억울한 마음에 시위를 하러 나온 일개 간호조무사일 뿐. 일절 안면이 없는, 이 평범한 두 사람은 그러나 이렇듯 격렬하게 싸움을 지속한다. 왜?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으니까.


요즘의 유행어가 반짝 떠오르는 이 시점. "아이고,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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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누구 진압하는 지도 모르고 나오지?” 

“나 간호조무사야.”




적의 사과 (Enemy's Apple, 2007)는 우리가 한없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사실 참 예외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예외 없이 세끼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며, 밤이면 잠자리에 드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속된 말처럼 ‘계급장 떼고’ 선 우리는 이렇듯 한없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니, 이 싸움은 참으로 무용하게 여겨진다. 이쯤에서 머리 위로 피어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을 테니. 우리는 그러니까 대체 왜,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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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호명은 상징적이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전투경찰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공권력이 아니다. 이제 거기에는 그저 정강이에 박힌 칼 때문에 다리가 잘릴 것을 걱정하는 한 명 분의 평범한 민수가 있을 뿐. 호명은 이 둘을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로 내려놓는다. 무용하게 이어지던 싸움 역시 골목 곳곳에 퍼져가는 최루가스에 손쉽게 무너져 내린다. 나란히 최루가스를 삼키고서, 콧물과 눈물을 쏟아 내던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머리의 방향을 같이한 채 들어 눕는다. 이만하면 됐다, 말이라도 걸어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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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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