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 사랑의 시작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의 초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을까. 솔직한 감정과 꾸밈없는 생각, 무의식보다도 깊숙이 숨겨둔 나의 치부를 공유할 상대가 생겼다는 건 기쁘지만 서도 두려운 일이다. 정확히 나와 같은 ‘내’가 둘이 되어 나의 슬픔을 반으로 나누고, 기쁨을 배가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고지낸 시간보다 ‘남’이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상대이기에 가장 가까울 수 있지만 금세 가장 멀어질 수 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보인 모습은 그의 300가지 가면 중 두 세 개일 뿐일 수 있다.
투란도트 역시 사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 수수께끼를 내어 맞추지 못한 청혼자를 사형시키는 잔인한 방식으로 방어기제를 펼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이방인 칼라프 앞에 무너지고 만다. 칼라프가 수수께끼를 모두 맞춰서가 아니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여성보다 비교적 우위에 있던 남자를 투란도트는 무서워했으나, 칼라프만은 투란도트가 사랑을 깨닫기까지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또, 칼라프의 충실한 종, 류가 보인 사랑은 투란도트를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인도했고 류의 사랑과 같은 칼라프의 맹목적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칼라프와 류는 투란도트의 사랑에 대한 두려움과 처녀성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를 주었다.
어쩌면 투란도트가 낸 세 가지 수수께끼의 답, 희망, 피, 투란도트는 투란도트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상징적 계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칼라프의 아버지가 계속해서 그를 ‘우리들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부르짖듯이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사랑을 깨닫게 한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희생이라 볼 수 있는 피는 류의 피일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있음에도 투란도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칼라프와 죽음으로 보여준 류의 사랑은 투란도트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푸치니는 진정 누구의 말대로 여성심리 묘사 천재임에 틀림없다. 저번 주 예술의 전당에서 함께한 정갑균 연출,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가히 무대연출과 음악성뿐만 아니라 주인공 투란도트를 정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심리를 완벽하게 정확하게 전달했다. 절제된 동작에 노래마저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오페라 속에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기란 무대 배경으로나 스토리 전개 면에서나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이를 해내었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 외에도 적색과 먹색으로 북경의 자금성이란 공간을 최소한의 단위로 재해석해 이국적이고도 ‘피바다’와도 같은 느낌을 줘 투란도트의 단단한 심적 방어기제를 표현한 무대 공간, 투란도트의 권위에 승복하지만 투란도트의 잔인함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군중들, 그 사이에서 총 3막 5장에 1장이 끝나도록 저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투란도트. 그리고 신비한 관현악의 조화 등 그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첫 등장에 오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된 군중의 무리는 레미제라블과도 같은 웅장함을 선사했고, 중간에 등장하는 핑, 팡, 퐁의 역은 애니메이션 뮬란에 등장하는 뮬란을 도와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 여인 옷을 입고 궁에 잠입한 동료 군사들을 연상시켰다. 뮬란의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렇듯, 그들도 핑, 팡, 퐁과 같은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적인 캐릭터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대략 3시간의 공연을 들었다 놨다.
관람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푸치니의 유작오페라 [투란도트]는 생각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투란도트에게 이입되어 여운 있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삼일을 끝으로 [투란도트]는 10월 26일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내렸지만, 내년, 혹은 내후년 기회가 된다면 정갑균 연출의 최진규 무대디자인의 [투란도트]를 꼭 찾아라. 1막부터 관객을 휘어잡는 무대에 화들짝 놀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