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느러미>는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SF 아트 시네마로,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다. 그렇게 편하게 느낄 작품은 아닐 거라는 말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황폐한 환경만큼 여유가 사라진 사람들과 세상을 조명한다.
영화 <지느러미>는 오염된 바다를 막고 있는 4,000km 장벽에 둘러싸인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지느러미가 생겨난 존재 ‘오메가’가 오염된 바다를 청소한다. ‘인간’은 그러한 오메가를 감시하고 착취한다.
“난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토대가 되는 것은 ‘환경오염’이다. 84분 내내 푸른 바다와 녹음은 찾아볼 수 없다. 인물들은 회색 도시에 갇힌 듯 무채색 가득한 배경을 벗 삼아 살아간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이 서서히 파괴되어 남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생력을 잃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자연은 분명 인간을 추방할 것이다. <지느러미>가 보여주는 미래도 상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은 턱없이 부족해서 식수조차 여유롭지 않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던 물, 푸른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도 언젠간 파괴될 것들이었구나. <지느러미>가 남긴 최초의, 그리고 가장 강한 인상이었다.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오메가’라는 존재가 생겨났다.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귀나 발의 모양새, 크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지느러미’였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오메가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며 착취했다. 마치 그래도 되는 존재인 양, 그리고 오메가는 그렇게 학습된 듯이 억압 속에서 인간이 시키는 일을 했다. <지느러미> 속 가장 불편한 점이었다.
‘오메가’라는 존재는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 특징을 제외하면 인간과 다르지 않으니 충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공존이라는 평화보다는 감시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선택했다. 그들의 ‘차이’에 더 집중한 결과였다.
인간은 본인과 비슷한 듯 다른 존재에 대해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깊이 고민해 보아도 하나의 결론으로만 귀결되었다. ‘공포’. 인간의 강압적인 태도는 미지의 것에 느끼는 공포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오메가를 지배하고 감시하려는 것도, 이해하지 않고 억압하려는 것도 모두 그러한 감정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자 머리가 아플 만큼 복잡한 문제들이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현 사회에 ‘오메가’라는 존재는 없지만, 인간과 오메가의 관계를 닮은 듯한 것들이 존재한다.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다른 성별을 사랑하거나 다른 모습의 가정에서 살아갈 뿐이지만, 사람들은 차별의 언행을 보인다. 소수자는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인데도 따가운 눈초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서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해 택하는 방어적인 태도가 점차 혐오와 차별로 이어진다.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이 확실한데 그러지 못하는 사회는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그 문제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 중 하나인 수진은 ‘오메가’인 미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그의 모친에게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인다고 말했듯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미아를 뒤쫓고 팀원들을 부른 것처럼 그들을 죽이고 싶었던 걸까? 그 간극에서 살펴볼 수 있는 수진의 감정적 동요에 자꾸만 집중하게 된다.
미아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의족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물고기 주제에 말을 얹지 말라며 오메가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아 ‘오메가’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의 지느러미를 끝내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혼란스러움 때문인지, 혹은 인간을 향한 배신감인지 관객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끝내 소리를 지른 미아와 그 소리에 귀를 막고 주저앉은 수진을 보면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 것인지, 다르다고 정의해버린 탓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확실한 답을 내릴 틈 없이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깊은 생각에 빠진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은 영화였다. 여전히 무엇이 맞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선택을 정답과 오답으로 정의하기보다는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보아야 한다고 느낄 뿐이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인다면 평화를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만 이어간다. 근미래를 그린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고민해 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