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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아, 진짜 왜 저래! -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 Debussy & Ravel Ensemble 2 - 빛의 팔레트 (7.15) [공연]

불러온 빛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종료를 취소하시겠습니까?

by 장유진 에디터
2026.07.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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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공연이 너무 짧다. 한 시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최소한 같은 레퍼토리로 한 바퀴 더 돌아야 그제야 배를 탕탕- 두드리고 말 것만 같은 ‘빛의 팔레트’가 나를 찾아들었다.


이 아쉬움을 달래려면 어찌해야겠는가?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 섞여 ‘와인 파티’에서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즐거움을 누려야겠다! 그전에 우리는 15일 밤 8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 일기장이 있다. 바로 여기!

 

 

 

Debussy, Rhapsodie (랩소디), L.98 (arr. for Saxophone and Piano)

브랜든 최(Saxophone), 김재원(Piano)


 

 

 

피아노가 홀로 음을 두 번 떨어뜨린 뒤 벌어지는 일이 있다. 음이 깜빡이기도 한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색소폰의 음은 연주자의 숨과 접힌 미간까지 고스란히 담아낼 만큼 선명하다. 저편에서 이곳으로 닿아오기까지 복잡한 상념 없이 곧장 나아간다. 거기서 나는 익숙함이라는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색소폰이 애초에 커다란 사운드를 내놓을 수 있는 악기라는 게 다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딱 여기까지. 그래야 듣기 편합니다.”라고 말하듯 필요한 만큼의 솜뭉치를 품에 안고 이곳으로 닿아온다. 그렇다고 끝까지 수위를 높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농밀함을 품었다가, 다음 음으로는 다시 유순하게 흘러가는 절묘한 반짝임도 있었다.


실제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쾌한 타격음은 듣기 좋게 만들어진 키캡 같아서, 나도 모르게 브랜든 최 연주가의 바삐 움직이는 손가락을 몇 번이고 응시했다.


피아노는 어땠던가? 색소폰이 노래하는 동안 피아노는 그릉거림을 잊지 않으며 든든한 바윗돌처럼 자리를 지켰다. 색소폰이 행여 구름 안으로 너무 녹아들지 않도록, 건반의 분명한 타격으로 음악의 윤곽을 세워주었다.


두 악기가 섞여 들 때의 모습은 어땠던가? 서로를 챙기고 있다는 티를 굳이 내지 않는다. 같은 악보를 달리고 있고 서로의 끝이 동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각자의 선을 망설임 없이 밀어붙인다. 그저 음악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그 조그마한 것만 맹렬하게 쳐다보면 된다.


그러면 관객은 이리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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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아-, 아주 깔-끔하다.’

 

 

 

Debussy, Nocturne et Scherzo (녹턴과 스케르초), L.26

여윤수(Cello), 아클리 희석(Piano)


 

 

 

서울시향의 첼로 수석님과, 처음 뵙지만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의 금호라이징스타로 선정되셨던 아클리 희석님이 예쁘게 웃으며 각자의 악기 뒤에 자리했다.


신기했다. 매번 롯데콘서트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분들과 단정한 차림으로 함께하시는 모습만 보다가, 이토록 가까이서, 첼로 한 대를 앞에 두고 평소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룻바닥 위에 자리한 모습을 보니 궁금해졌다.


그의 첼로 안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 즐거운 궁금증이 피어났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또 한 번의 ‘익숙함’을 느꼈다. 어디서일까? 그의 음색이다! 여윤수 첼리스트는 실제로 꽤 낮고 나긋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의 현 위에도 그 목소리가 그대로 있더라. 너무 신기했다! 반쯤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그가 허밍을 하고 계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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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여윤수

 

 

음이 끝나고 첼로가 작게 째깍인 다음, 아주 짧은 너풀을 그린 뒤 첫 시작과 동일한 구간에서 아래를 짚고 올라오는 그때에도 구덩이를 마구 깊게 파고들지는 않으시더라.


나는 첼로 소리가 내려갈 거라면 무조건 지하 바닥을 뚫고 올라와야 인상 깊게 여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딱 입가의 미소 정도로만 부드럽게 획을 그으면, 그 자체로 눈에 담기고 감미롭게 음미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는구나. 그걸 알았다.


색을 높이기보다 자애롭게, 빛깔을 들여놓기보다 은은한 향취를 느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첼로와 피아노였다. 첼로가 수직보다는 수평선에 가깝게 떠 있는 동안, 피아니스트께서는 본인의 자취를 감춘 채 음표를 토닥토닥 움직여 가벼운 여우비를 내려주시더라.


잔디밭을 콩콩-, 때로는 탕탕- 걷기도 하고 조심스레 뛰어다니기도 하는 그 얌전한 모양새가 더해지니, 나는 이리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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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아클리 희석

 

 

“어찌 이리 사랑스러운 조합일까?”

 

 

 

Ravel, Pièce en forme de Habanera (하바네라풍의 소품), M.51

견나현(Violin), 아클리 희석(Piano)


 

 

 

조금 전 인사했던, 여우비를 내리던 토끼가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바이올린, 하얀 손수건, 그리고 라벨을 들고 또 한 명의 연주자가 나타났다.


듣자마자 ‘이번 주 월요일에 이 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들었구나.’ 하고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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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견나현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외울 수 있는 매력적인 구간이 있다. 피아노 버전으로 들었을 때는 오히려 홀연해 보이기도, 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확실히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니 은근한 밀당이 더해진다.


피아노가 반복적인 길을 걸어줄 때, 바이올린이 걱정 없이 고개를 뒤로 보내고 소리는 앞으로 내보내는 순간에 연분홍빛 매혹이 있다. 너무 짙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물감이 그의 팔 안에 펼쳐졌다.

 

 

 

Ravel, Introduction et allegro (서주와 알레그로), M.46

이수빈(Harp), 박지혁(Flute), 여하정(Clarinet), 임동민·견나현(Violin), 신경식(Viola), 여윤수(Cello)



 


마룻바닥 위였으니—일반적인 음향을 위주로 하는 공연장이 아니었기에—첫 시작에 단번에 매혹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악기가 관악기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길을 거닐 때, 하프가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속절없이 그들 안에 갇히고 말았다.


하프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던가? 이수빈 하피스트의 하프 위에는 잎사귀와 그에 얽혀 있는 꽃들이 풍성히 수놓아져 있고, 수직으로 이어진 빨간색과 흰색의 현들이 무수히 일어나 있다.


이렇게까지 강렬한 기색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구나. 이제야 알았다. 늘 오케스트라의 악기 중 한 대로 만나왔지, 이렇게 인사를 나눌 기회는 없지 않았던가.


일곱 명의 연주가가 그날의 무대 위로 ‘신묘한 바람’을 불어다 놓았다. 음악 안에 있으면 어느 때라도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공상을 하게 마련이겠지만, 이 라벨의 서주와 알레그로 안에서만큼은 우리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멀리 있다고만 여겼던 악기들이 완전한 에메랄드를 가져다 놓을 때, 나도 모르게 문장 하나를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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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스트 이수빈

 

 

‘아- 나 기분 좋을지도.’


괜히 턱에 팔을 괴고 고민거리를 길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바이올린 두 대가 묘사하는 때가 있다. 이 평화로운 걱정거리를 어찌하면 좋을까? 여섯 악기가 갈피를 정해보는 동안, 하프가 이리저리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상상 주머니를 아예 그쪽으로 잡아당겨 분위기를 휘어감는 때도 있다.


이들이 마냥 파스텔톤의 서정을 노래했는가?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오늘의 제1바이올린은 따스한 햇빛보다 차디찬 기세에 가까웠다. 그가 무대 맨 끝쪽에 자리한 바이올린이 되면, 무엇이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어떤 차가운 기운이 들어선다. 음색이 워낙 세차다.


그러니 ‘번개’가 치기도 하고, 하루의 절반 이상이 다 지나간 때에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밤’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위로 하프가 오묘한 달빛을 들여놓았다. 라벨 안에서 우리 마음에는 편안함과 기쁨이 자리하고, 생기 어린 담소가 악기와 악기 사이를 오간다. 이 사이에서 관객은 오히려 관찰자여서 행복하다. 그저 담기만 하면 되는 때가 아닌가?

 

 


Debussy, Syrinx (시링크스), L.129

박지혁(Flute)


 

 

 

여러 명이 자리를 꽉 채운 다음, 홀연히 플루트 한 대와 오늘의 플루티스트가 나타났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모두가 침묵하자, 옆으로 몸을 뉘인 채 노래하는 저 악기는 상당히 홀연한 편이구나. 그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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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 박지혁

 

 

긴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이라기보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곤 하는 ‘플루트’를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로 기억해보면 어떨까. 그리 제안해주는 것 같더라. 곡이 워낙 짧은 편이라 이별이 너무 빨리 찾아와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Debussy, Sonata for Flute, Viola and Harp, L.137

박지혁(Flute), 신경식(Viola), 이수빈(Harp)


 

 

 

그 아쉬움을 쉽게 달랠 수 있도록 오늘의 플루트가 비올라와 하프를 데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다른 악기와 함께 있으니까 티가 난다. 아까는 분명 혼자됨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함께하니 우리가 아는 다정한 면모가 관악기의 소리 안에 가득하다.


멀찍이 떨어지기보다 가능하면 가까이 닿고 싶은 긴 음을 그려낼 때, 하프가 요정이 되기도 하고 물결이 되기도 한다. 이 행복한 꿈에서 어찌 깨어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상서로운 꿈만 같다. 이 품 안에 있으면 진정한 유유자적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고 말겠다.


내 눈에 또 무엇이 담겼더라? 비올라가 리본을 한 번씩 묶기도 했다.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 소나타 4악장에서 내가 즐겨 보곤 했던 그 소리의 작은 묶임이 이곳에도 머물러 있더라. 드뷔시를 통해 다시 인사할 수 있어 기뻤다.


1악장이 끝나고, 앞선 곡들이 계속 단악장으로 이어져 이 곡도 순간 이제 끝인가 싶었다. 다행히 연주가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헷갈릴까 봐 곡 제목을 메모해둔 포스트잇에 손가락을 대고 다시 살폈다.


아- 이제 2악장이구나.


내가 살며시 종이 위를 응시하자, 동행도 나를 따라 종이 위의 ‘간주곡’을 읽었다. 비올라가 까만 노래를 부르고 플루트가 파란 기운을 들여놓으면, 하프가 금빛으로 물든 뭇별을 데려다 놓는다.


어디서 출발한 길인가? 그 물음에 긴 이유를 덧붙여 보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그려질 테지.


빠르게 찾아온 3악장에서는 하프의 현도 저렇게까지 ‘강렬하게’ 뜯어도 되는구나 싶어 흠칫 놀랐다. 왜 나는 악기에 달린 현이 꽤 약한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직접 소리를 내본 입장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뭔가 금이야 옥이야 다뤄야 할 것만 같은데, 연주가들은 그것들을 괴롭히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그들의 어여쁜 장난이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를 마구 파고든다.


때로는 우리 위에서 동글동글 빙글빙글 춤도 추더니, 두 번의 마침표를 찍고 우리 곁을 귀엽게 떠나갔다.

 

 

 

Ravel, Tzigane (치간느), M.76

임동민(Violin), 아클리 희석(Piano)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는 내가 주기적으로 청취하는 바이올린 연주가인데,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마테오 고프릴러(1715-1720)로 연주했다. 


다만 내가 그의 연주를 최초로 들었던 것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고, 여기서 사용된 악기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름의 것이었다. 어디 출신이며 어느 시대에 태어난 악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악기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얼마나 큰 ‘개성’이 담길 수 있는지를 체감시켜준 내 인생 첫 번째 캐러멜빛 악기였다.


시작의 바이올린은 영상 안에 담아두고, 직접 실연으로 그의 연주를 감상했을 때에는 늘 마테오 고프릴러였다.


작년까지 여러 공간에서 만난 마테오 고프릴러는 굉장히 신경질적이면서도 예민했고, 얇아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린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일정 수준까지 절제될 수는 있어도 영원히 통제될 수는 없을 것 같은 소리였다.


그렇기에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연주되었던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여태껏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두둥. 이번 교향악축제를 기점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친구가 등장했다. 바로 프란체스코 루제리(Cremona, 1667)다.


생김새부터 달랐다. 고동색에 때로는 자줏빛이 날 것만 같은 진한 색의 악기와 달리, 이번 악기는 조금 더 밝고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악기보다는 채도가 살짝 높은 캐러멜빛이었다.


루제리 씨와 어떤 연주로 첫인사를 했던가? 다름 아닌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와인 파티에서 살짝 전해 듣기로는, 그 난곡을 연주할 당시 이 악기와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악기 하나가 바뀐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싶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바이올린은 정말 고고한 야생마만 같아서 사람과 시간을 들여 서로 길들지 않으면 제 소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과 난이도 100짜리를 어떻게 통과해내는 거지?


사람마다 특장점과 매력이 다르듯, 바이올린도 악기마다 가지고 있는 성질과 음색은 물론 곁을 내어주는 정도까지 모두 다르지 않은가. 같은 연주가가 동일한 기량으로 연주해도 도구에 따라 그날 태어나 사라지는 연주의 하루가 달라지는 이 음악 세계에서…. 돌이켜봐도 참 신기하다.


그렇다면 15일의 프란체스코 루제리와 임동민, 그리고 라벨의 치간느는 어떤 장면을 탄생시켰던가? 놀랍게도 ‘성장’이 메인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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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아클리 희석,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

 

 

우리가 생각하건대 무대에 오른 연주가들은 이미 일정 수준에 달해 있어, 뭔가 더 자라날 점이 있다고 쉽게 떠올리지 못하지 않은가. 그날의 곡과 음악을 다루는 이미 준비된 ‘사람’으로 보일 뿐이겠다.


그런데! 아- 내가 모르는 사이 바이올린의 성대가 갈아 끼워져 있었다.


서서히 피어나는 그 얄궂은 애는 어디 가고, 4월에 한창 연주가와 발을 맞추며 낯을 겨우 풀어가던 와중의 루제리는 또 어디 가고,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호흡이 맞아 있었다.


연주가가 소리치면 그가 원하는 만큼, 때로는 그보다 크게 노래할 줄 아는 바이올린이 되어 있었다. 아니, 그새 친해졌다고?


거기다 이날은 유달리 활을 든 팔에도 시선이 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현 위에 활을 얹으려면 팔이 몸 안쪽 방향으로 접힌 상태에서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그 움직임이 유독 가볍고 부드러웠다. 뭔가 조금 더 값비싼 윤활유를 발라 관리한 느낌.


아니, 그전에도 무겁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부드러워졌지? 그런데 왜 소리는 더 커졌지? (????) 연주가 없는 때에는 남은 학업을 이어가는 그는, 독일에 한 번만 다녀오면 뭔가 달라져 있다. 폐관 수련을 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이번에는 악기까지 달라져 있고, 음원과 실연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전해지는 ‘치간느’ 속에서 만나니 그 변화가 ‘시작’부터 체감되었다. 분명 음원으로 들었을 적에는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조금은 꽉 막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작점이 ‘콰작’ 하고 뚫려 버린다.


어, 뭐야. 몸집이 커졌다.


첫 목소리를 내거나 애달픈 듯 긴 길을 그려야 할 때, 예전의 붓칠은 별다른 테두리 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선을 두터운 테두리가 감싸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가냘프게 소리 냈을 법한 가장 높은 음에 든든한 둘레가 생긴 것이다. 


호오? 흥미롭다.


비브라토로 우는 때에도 울먹임 아래로 저음이 생겼다. 분명 바이올린의 길을 가고 있는데도 은근한 첼로의 울림이 겹쳐지며, 음표 아래로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냥 날아오르던 이전의 소리와 달리, 이번에는 그 아래에 단단한 지지대가 생겨 있었다. 뒤편에 짙은 색이 자리한 채 음을 받쳐주니, 높은 음조차 이전보다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두 개 이상의 현을 짚을 때에는 귓가로 다가오는 소리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중심부를 흔들림 없이 꽉 눌러놓고, 그 위로 한 겹을 더 끼얹으려는 듯했다.


내가 주로 응시하던 빛선은 아주 얇디얇은 가성 같은 음에 있었는데, 그 빛이 이제 이 두터운 소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 빛이 옮겨간 것이다.


춤을 추는 구간에 밑바탕이 생기니 이 자유에도 진중한 면모가 생겨났다. 어디까지 두터워질 수 있고 어느 타이밍에 물러날지를 두고 예측할 수 없는 와중에, 보랏빛 피아노가 웅얼거리는 바이올린 옆으로 들이닥쳤다.


피아노가 동그랗고 예쁜 구슬로 힌트를 건네고 나면,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난다. 바이올린이 특이한 박자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악보를 보지 못한 나는 이 독특한 소리의 모양새가 누구에게서 기인한 것인지 또 상상과 상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나를 말하고 둘을 말해야 할 때 셋이 되는 듯한 상태로 뒤로 가더니, 성대를 꽉 조여놓고는 갖은 ‘장난’을 친다.


이 교묘한 입체도형은 뭐지? 꼭짓점의 위치가 너무도 특이하다! 

 

어깨 위에 나무를 얹고 우쿨렐레를 연주할 때는 또 어떤가. 아까 강한 힘으로 튕겨내던 그 ‘하프’만큼이나 소리 구슬을 튕겨낸다.


오랜만에 아주 얇은 휘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같았으면 뒷부분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법한 구간이었다. 그 순간, 내가 이전의 악기보다 이 악기를 더 마음에 들어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시라. 아래에서 받아주는 음이 생겼다는 것은, 그 바로 위에서 무슨 일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걸 본인도 잘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악보에 매우 충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도화지를 전광석화처럼 메워내더라. 수채화처럼 번지는 선이 아니라, 채도 높은 색 위로 하얀 선을 한 번 더 그어내는 움직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의 양상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밑바탕을 먼저 다지고 올 줄은 몰랐다. 날이 갈수록 궁금증만 쌓여간다.


아니, 연주 때마다 오늘의 현이 무엇인지, 어떤 컨디션인지 사전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앞으로 만날 연주마다 이토록 다채로운 ‘변화구’가 기다리고 있는가.


피아노가 잠자코 장난을 쳐줄 때에도, 가만히 뒤따를 때에도 바이올린은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하더니 기가 막히게 액셀을 밟아 나간다. 그러고는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던진 끝에 도파민이 치솟는 클라이맥스가 찾아왔고, 나는 결국 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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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

 

 

“아, 진짜 왜 저래(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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