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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보이지 않던 것이 목소리로 이어졌다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도서]

서수연의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읽고

by 최은파 에디터
2026.07.16 14:00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본문, 책 표지.jpg

    

 

책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만진 건 글자가 아니라 점자였다. 표지 위, 제목 자리에 도드라진 점들이 있었다. 손끝으로 더듬어 뜻을 짚어보았다. 저자 서수연, 국내 1호 음성 해설 작가의 이름이었다. 시각장애인 독자가 이 책을 처음 만나는 방식이 그렇게, 눈이 아니라 손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책날개에는 도드라진 사각형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QR코드를 촉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만든 표시다. 코드를 찍으면 표지 해설이 흘러나온다. 그 해설도 저자가 직접 쓰고 낭독했다. 종이책과 오디오북을 같은 날 함께 펴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진 독자들이 같은 시기에 이 책에 가닿기를 바랐다는 출판사의 말이 표지 위 점자 몇 개와 날개의 도드라진 사각형만으로 이미 증명되고 있었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을 이야기하던 2021년, 시각장애인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파편적인 대사와 난투극의 효과음만으로 데스 게임의 규칙을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19개 언어로 음성 해설이 제공된 작품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17개, <브리저튼>의 15개보다 많다.


이 사실 하나가 책의 존재 이유를 요약한다. 우리가 화려하다고만 여겼던 화면 뒤편에는, 늘 소외된 감각이 웅크리고 있었다. 음성 해설은 결국 캄캄한 화면 위에 문장으로 불을 켜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은 음성 해설에 관한 책이다. 책을 펼치기 전, 나 역시 오해하고 있던 게 하나 있었다. 음성 해설과 화면 해설이 각각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로 다른 서비스일 거라는 짐작이었다. 틀렸다. 둘은 사실 같은 대상을 향한 두 개의 이름이다. 시각장애인이 드라마나 공연, 전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장면을 말로 옮겨 들려주는 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따로 있다. 폐쇄 자막과 수어 방송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익숙한 ‘화면 해설’ 대신 ‘음성 해설’이라는 말을 골랐을까. 그가 다뤄온 장르를 나열해 보면 답이 보인다. 드라마와 영화만이 아니라 무용, 미술품 전시, 마술쇼까지. 애초에 화면이 없는 장르가 절반이다. 화면 안에 갇히지 않는 말을 쓰려면, 이름부터 화면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라면, 혹은 접근성이라는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둘을 헷갈리지 않고 구분해 두면 좋겠다.


음성 해설의 역사는 2003년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국의 낮 시간대 방송을 일부 허용했고, 2005년에는 이를 전면 허용하면서 자막 및 화면 해설 강화를 권고했다. 시범 편성으로만 존재하던 음성 해설 드라마가 이때부터 정규 편성에 자리 잡았다.


저자 서수연은 이 첫 정규 편성작의 대본을 쓰고 직접 낭독한 사람으로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은 국내 1호 음성 해설 작가다. 드라마 작가와 성우를 꿈꾸던 시절,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녹음실에서 신문과 책을 낭독하던 그녀는 화면 해설 일을 만나 대본과 낭독을 모두 맡게 되면서 이 길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시각장애인의 시청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오래 두꺼웠다. 그 무관심을 뚫고 지금까지, 그녀는 드라마와 영화, 예능, 연극, 뮤지컬, 미술 전시, 무용, 마술쇼까지 7,800여 편의 작품에 음성 해설 대본을 썼다.


서수연 작가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작업한 방식이 특히 인상 깊었다. 초창기 저자는 대본을 쓰기 전, 눈을 감고 먼저 드라마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화면 없이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려 애쓰는 그 시간이 곧 시각장애인의 자리에 서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체감한 불편함이 대본의 방향을 정했다.


작업의 어려움도 뒤따랐다. 화면 속 모든 디테일을 낭독문으로 옮겨야 하는 사람에게는 소품 하나, 인물의 표정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단서였다. 하지만, 이 일에는 함정도 있다. 시각장애인은 색을 모르니 색채 묘사는 필요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 관객이 스스로 헤아릴 여지까지 앞서 다 설명해 버리는 것. 배려라는 이름으로 그어지는 그 일방적인 선을 경계하는 대목에서, 나는 좋은 의도가 종종 상대의 몫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자기 일에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고 싶었던 저자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고, 방송법상 제작 편수의 10퍼센트 이상을 음성 해설로 만들어야 하는 나라였다.


뉴캐슬대학교에서 미디어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돌아온 저자는 국립극장, 국립극단, 두산아트센터,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 국내 첫 터치 투어를 성사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소품과 무대장치를 직접 만져보는 자리다.


그의 행보를 따라,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장르에도 하나둘 음성 해설이 스며들었다. 무용 공연 <무용수-되기>, 마술사 이은결의 국내 최초 배리어프리 일루션 공연이 그렇게 태어났다. 영화 <블라인드>는 그가 참여한 첫 한국 영화 배리어프리 버전이었고, 이후 <남매의 여름밤> 같은 작품도 그녀의 손을 거쳤다. 큰 글씨 팸플릿, 낮은 위치의 버튼, 만질 수 있는 복제품, 소리를 진동으로 전하는 의자와 조끼까지. 접근성이라는 개념은 어느새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안이 온 중년과 키가 작은 어린이까지 함께 환대하는 자리로 넓어져 있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무대는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책에서 작가는 한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한 연극 공연에서, 배우가 실수로 물항아리를 떨어뜨린 적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깨져야 했을 항아리가 이번엔 깨지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한쪽에 똑바로 섰다. 미리 써둔 대본은 “물항아리를 떨어뜨린 슬슬이가 사색이 돼 서 있다. 도삼이 장갑을 끼고 깨진 조각을 치운다”였다. 그대로 읽으면 거짓말이 되고, 가만있으면 관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수연은 그 짧은 순간 “떨어진 항아리가 굴러가 한쪽에 서 있다”라고 즉석에서 문장을 바꿔 냈다. 무대 위 배우도 재치 있게 대사를 받아 상황을 수습했다. 대본과 현실이 어긋나는 그 몇 초, 그 틈을 메우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서수연이 후배들에게 강조한 덕목은 세 가지다. “글쓰기 능력, 분석력, 그리고 따뜻한 마음.”(75쪽) 언뜻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완성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대본을 쓰는 손은 혼자여도, 그 문장이 관객에게 가닿기까지는 여럿의 손을 거친다. 낭독하는 성우의 호흡, 방음 부스를 만드는 스태프, 편성표에 자리를 내주는 방송사, 무대 위 소품을 허락하는 극장까지. 이 모든 협업이 없으면 문장은 그저 문장으로 남는다.


그래서 저자는 음성 해설을 ‘다정한 종합예술’이라 불렀다. 다정하다는 말과 종합예술이라는 말, 둘 중 어느 쪽도 빼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 다정함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고, 예술이라는 형식만으로는 온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 표현 하나가 책 전체의 온도를 대변한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외감의 해소다. 같은 장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해설과 화면의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저자는 이 일치성을 화면을 그대로 받아쓰는 수준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짚는다.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라이브 공연을 해설할 때는 그 정확함이 더 아슬아슬해진다. 배우의 대사와 효과음에 실시간으로 맞춰 낭독해야 하고, 객석의 소음 하나 마이크에 섞이지 않도록 완벽히 방음 된 부스가 필요하다. 현실은 대개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로 흘러간다. 그런데도 매번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의 태도 앞에서, 나는 이 일이 기술이 아니라 근성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길을 걸을 때 그는 오디오북을 1.6배속으로 듣는다고 한다. 어휘의 그물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언어의 근육을 매일 조금씩 단련하는 셈이다. 시각장애 독자들은 보통 1.8배속 이상으로 듣는다니, 듣는 이도 쓰는 이도 이미 어딘가 부지런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가는 글의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사람은 저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었다. 사명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자신의 즐거움과 재미를 채우는 데서 그친다면, 그건 취미이지 사명이 아니다. 사명은 그 즐거움이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고, 타인과 함께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무엇이다.


서수연 작가의 20여 년은 그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는 시간이었다. 그가 글쓰기와 낭독이라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취미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향한 곳은 늘 자신이 아니라 화면 저편의 누군가였다. 캄캄한 방에서 홀로 완성한 문장 한 줄이, 결국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가닿아 함께 웃을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었고, 이 책이 조용히 증명하는 사실이었다.


책을 덮고 나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서문의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답을 찾았다기보다, 그 질문을 손끝으로 한 번 더 짚어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남긴 마지막 다짐이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모두를 위한 접근성 콘텐츠 전문가로 여러분과 만날 것이다. 그것이 현장과 연구라는 두 갈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내게 준 소명이자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지금처럼 하다 보면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접근성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우린 서로 다르지만, 서로에게 가닿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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