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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는 법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도서]

화면해설 속 ‘본다는 것’의 의미

by 최아정 에디터
2026.07.12 13:43

 

 

표지평면_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jpg

 

 

우리는 눈을 뜬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아침마다 오고 가는 거리, 익숙한 사람의 얼굴,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들. 너무 쉽게 보고 빠르게 지나친다. 그래서 가끔은 착각한다. 우리 눈에 담은 모든 것들을 전부 이해했다고 말이다. 서수연 작가의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이라는 제목을 읽는 순간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모순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본다'는 행위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읽으며 문득 내가 써온 화면해설을 떠올렸다. 나는 그동안 화면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전한 것은 정말 '장면'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이해한 장면이었을까.

 

처음 화면해설을 시작했을 때는 이 일을 단순한 번역에 가깝게 생각했다. 눈으로 본 장면을 문장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믿었다. 화면에 사람이 걷고 있으면 '걷는다'라고 쓰고, 미소를 지으면 '웃는다'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내가 본 것을 정확한 문장으로 전달하기만 하면 화면해설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일을 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화면해설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장면의 핵심은 무엇인지, 시각장애인이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 설명은 어디까지이고 상상은 어디부터 남겨두어야 하는지. 허나 화면해설에는 정답이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은 기술보다 태도가 먼저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에서 서수연 작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는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동시에 화면해설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감상을 돕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화면해설 작가가 품어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음성해설 작가란 누군가를 대신해 세상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서수연 작가는 세밀하게 써 내려간 화면해설은 해설자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된다고 말한다.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와 '딱지'처럼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낯선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장면에 보이는 사실만을 옮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화면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일이 요구된다. 그 판단과 책임은 온전히 화면해설 작가의 몫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화면해설이 영화와 방송을 넘어 연극,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확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면해설은 이제 장면을 설명하는 기술을 넘어,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고민 앞에서 멈추지 않는 태도였다. 더 나은 화면해설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직접 경험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도전 정신은 나 역시 본받고 싶은 부분이었다. 화면해설은 완벽한 문장을 쓰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장면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넓혀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화면해설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잘 설명하는 작가'보다 '잘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눈에 보이는 장면만 좇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 속에 담긴 의미와 감정까지 읽어내는 사람.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화면 속 세계를 자신의 감각으로 충분히 상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더 오래 고민하고 더 깊이 관찰하는 화면해설 작가가 되고 싶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시각장애인의 세계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지 않을까. 이 책은 내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보다 먼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가르쳐 준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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