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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쉬(POSH)>는 영국 상류층의 오만함과 특권의식,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모럴 해저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로라 웨이드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다. 국내에선 23년도 3월 초연과 같은 해 12월 앙코르 공연을 거쳐, 25년도 10월부터 재연이 진행되었다. 본글은 1월 초까지의 재연 관람을 기준으로 작성된 글이다.

 

*모럴 해저드 :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정보부족으로 정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취하는 것

 

 

 

Ⅰ. 모두를 비추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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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쉬>의 무대를 볼 때 눈에 띄는 것은 파티가 벌어지는 긴 식탁과 각종 접시와 와인잔, 그리고 그 뒤편을 아우르는 커다란 거울이다. 특히 ‘거울’은 본래 물건의 목적처럼 무대 위 상황을 반사해 보여주지만, 상당히 울퉁불퉁해 정확한 인지가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거울의 존재 덕분에 멤버들이 앞에선 그럴듯한 말들을 내뱉는 고고한 자세를 보이지만, 뒤에선 술에 취해 토를 하는 등 추하게 엎어진 자세가 보이는 '이중성'의 '대비'가 한눈에 담긴다. 라이엇 클럽의 갖춰진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거울을 보면 흐트러진 바보 같은 모습이 속속히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대화에선 호화로운 요리가 언급되지만 무대 위에는 식탁과 빈 접시만이 놓여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식사 대신 허공에 칼질하는 모습은, 그들이 집착하는 격식이 얼마나 알맹이 없는 허상인지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필자는 특히 거울을 통해 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관객 자신’의 얼굴도 보도록 한다는 점을 눈여겨보았다. 라이엇 클럽의 자기 인식과 행태에 대한 그릇된 양상을 보고,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라이엇 클럽을 보며 웃고 있는가, 찡그리고 있는가. 만약 웃고 있다면 그것은 동의인가, 비웃음인가. 공연을 보았거나, 보지 못했더라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함께 생각해 보길 바란다.

 

 


Ⅱ. 주어진 권력의 오류, 일그러진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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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등장하는 라이엇 클럽은 실제 영국 내 최고 가문과 재력, 학력을 가진 영국의 상위 1%의 백인 남성들의 모임이었던 ‘벌링던 클럽’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클럽의 리더 제임스가 이 모임에 늦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인턴십에 중요한 수학 시험 때문이다. 그는 곧 사회에 나갈 인물이기에 사람들 앞에선 진중하고 우아한 태도를 ‘의도적으로’ 구사하려고 노력하면서, 편의에 따라 멤버들의 말에 때때로 동조하기도, 반대하기도 한다. 본질은 변화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멤버들의 무례에 대해 고개를 숙여 사과하느라 알리스터를 비롯한 인물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알리스터는 자신들이 서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그들보다 마음껏 누리지 못한 채 손해를 보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초월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소수라는 이유로 억압받는다고 생각해 반발한다. 이 부분에서 마일즈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알리스터는 극 중 논리가 가장 일관적이고, 또 노골적이다. 다른 일원들이 하지 못하는 말들을 먼저 가감 없이 내놓는다. 자신에게 ‘초월적 권력’이 주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신분제도가 ‘포쉬’로서 존재하는 그들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점차 그것이 ‘감히’ 도전받는 느낌이 그에겐 큰 불만이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제임스가 고작 시험 때문에 늦어야 하는 현실이 말이다. 그래서 알리스터는 새로운 신분제도를 선언한다. 중산층 부르주아가 논의의 장에 들어오면서, 계급의 벽이 도전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규정으로 ‘자본주의’를 들먹인다.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시작부터 많은 돈을 들이밀며 서비스와 사람을 매수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돈을 지급하면 정당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1을 주면 1을 받아 마땅하므로, 주문한 와인이 뒤바뀌어 오고, 가이가 준비한 ‘텐-버드-로스트’가 10마리가 아닌 9마리였을 때 불만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10을 주고서라도 타인의 1을 빼앗겠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옷을 갈아입고 싶다며 이미 예약된 방을 더 큰 돈을 주고 쓰겠다고 요구하거나, 무리한 성행위를 거부하는 여성에게 돈을 주고 행위를 강제하려고 시도하는 것, 그리고 다른 손님들보다 많은 돈을 냈다는 이유로 그 공간을 자신들의 무법지대로 만드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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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가장 큰 오류는 자신의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상황을 ‘통제’로 여기며 중산층 계급 ‘전체’에 대한 분노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펍 주인의 항의에 분노한 알리스터는 자신을 벼랑 끝에 몰지 말라며 남자를 폭행한다. 알리스터의 행동이 신호탄이 되어 결국 폭발한 억눌림은 집단 구타로 이어져 펍 주인의 목숨을 위협한다. 기행이 극에 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드러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하나의 계급의식이 약한 것은 아니며, 그것은 라이엇 클럽의 리더인 제임스부터 집단 폭행의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신고한 마일즈까지 모두 해당한다. 누군가는 방관했고, 동조했고, 침묵했기에 모두 나름의 이유로 계속해서 라이엇 클럽의 일원이 되기를 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Fin. "다시 시작해요. '라이엇 클럽'"


 

<포쉬>는 계급의 불평등과 카르텔을 깨부수자는 메시지를 주는 극은 아니다. 그들을 대놓고 비난하지도 않고, 풍자의 성격으로 경쾌하게 풀어내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상류층의 권력관계로의 동조와 편승의 흐름, 개개인의 취약성과 분열, 다시 이익을 위해 권력 앞에 연합하는 과정까지 전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어진 것들 - 명문 옥스퍼드라는 학력, 최상류층 학생들의 사교모임으로 이루어진 인맥,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가문의 부 -을 능력으로 얻은 ‘자격’이라고 착각하는 라이엇 클럽 멤버들의 '왜곡된 인지와 분노', '초월적 권력이란 허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집단'을 목격한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극이다. 때문에 보는 관객마다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게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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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묻고자 한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오만을 보고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리고 과거 당신은 어떤 인물을 혐오하거나 공감했는가. 당신은 리더 제임스처럼 조용히 세습된 성공을 따르고 있을 수도, 가이처럼 신분의 계단에 오르기 위해 내부 권력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을 수도 있다.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알리스터를 비판하다가도, 이익을 위해 동조하는 마일즈처럼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공연을 보며 당신은 그들의 허례허식과 천박함을 비웃다가도,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보며 그곳에 속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그리하고 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계층 간의 견고한 구분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폐쇄적인 인적 네트워크는 정/재계 모임, 고급 주거 단지 커뮤니티, 고가 예술품 컬렉터 모임 등으로 여전히 외부와의 경계를 명확히 하며 공고하게 존재한다. 세상 꼭대기에 그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의 손을 잡은 이들이 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는다.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시간이 갈수록 소득 증식을 위한 개인의 노력이 불평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레 심화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위로 오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매 순간 노력하는 경쟁은 늘 치열하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때때로 우리 역시 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시스템은 언제나 굳건하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때때로 우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연출이 적은 문장을 보며, <포쉬>에서 2026의 대한민국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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