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타지 않는 불 앞에서
두두리는 옛 문헌에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다. 도깨비의 원형이라고도 하고, 동시에 대장장이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고 한다. 두두리는 불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불은 나무로 된 그의 몸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두려운 대상이지만, 그에게는 불을 다루는 슬기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이 존재를 빌려와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지금 우리 앞에서 타오르는 불은 AI다. 무엇을 물어도 막힘없이 답하고, 단숨에 소설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찍는 불. 도서전은 이 불을 피할 길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그 앞에서 안전한 대답을 거부하고 더 큰 질문을 벼려내는 자를 호모 두두리라 부른다.
처음 이 문구를 읽었을 때, 솔직히 조금 의심스러웠다.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이야기하는 도서전 주제는 이제 거의 클리셰에 가깝지 않나 싶었던 거다. 매년 도서전마다 비슷한 화두가 반복된다는 인상도 있었고, '불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는 비유도 솔직히 멋있게 들리려고 만든 말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거창한 선언보다는 현장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무엇을 들고 줄을 서는지를 더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후기는 그 주제 문구를 그대로 받아 적는 대신, 직접 세 번 걸어본 도서전이 그 말을 어떻게 배신하거나 증명했는지를 적어보려 한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 전시 '인간선언 Homo duduri: 2×2=5'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인스타그램)
이 의심이 조금 누그러진 건 주제전시 '인간선언 Homo duduri: 2×2=5' 앞에서였다. 전시 제목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2×2=4가 정확하고 효율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답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칭찬해야 한다면 2×2=5라는 오답도 때로는 귀엽게 봐줄 만하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전시는 이 문장을 빌려, AI가 가장 높은 확률의 답을 곧장 내놓는 시대에 굳이 그 답 앞에서 다시 질문하는 인간을 호모 두두리라 부른다. 세계 고전문학 속 문장들을 늘어놓고 관람객에게 각자의 질문을 받아 전시 안에 이어 붙이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정확한 답이 아니라 가장 멀리 나아가는 질문을 모으겠다는 취지였다.
나는 이 발상이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정답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일부러 틀릴 가능성 쪽으로 걸어가 보는 일. 그건 어쩌면 내가 시를 쓰고 비평을 쓰면서 줄곧 해온 일과도 닮아 있었다. 한 사람의 질문이 다른 누군가의 질문이 되어 이어진다는 전시의 말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시집 한 줄에서 시작된 질문을 들고 인터뷰 자리에 나가곤 했으니까.
다만 이 좋은 발상이 전시장 안의 문장으로만 머무는 것과, 도서전이라는 행사 전체의 운영 방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전시는 틀릴 가능성을 환영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도서전이 누구를 부스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들이지 않는지를 정하는 기준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걷는 대신 떠밀리는 법
나는 이번 도서전을 세 번에 걸쳐 다녀왔다. 수요일엔 친구와, 금요일엔 지인과, 토요일엔 문예창작을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과 함께 서국도를 구경했다.
사실 도서전장에 들어서기 전, 예매부터가 전쟁이었다. 얼리버드 티켓은 6월 8일 오전 10시에 열렸는데, 나는 알람까지 맞춰두고 정시에 접속했는데도 원하던 주말 시간대는 이미 줄어 있었다. 일반 티켓 오픈 날도 비슷했다. 강연 예약은 더했다. 보고 싶었던 북토크를 한두 개 골라뒀지만, 예약 시작 시간이 되자마자 화면이 버벅이더니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기 강연은 1분도 안 돼 마감된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직접 손가락으로 클릭 경쟁을 해보니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세 번 모두 가겠다고 마음먹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같은 코엑스, 같은 부스 배치도였는데도 매번 다른 도서전을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수요일은 평일 오후라 그나마 걸을 틈이 있었다. 친구와 나는 부스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책등을 하나하나 살폈고,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으면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런 여유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 속 수많은 인파의 모습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인스타그램)
금요일 아침, 나는 아침 9시 오픈런까지 감행했다. 일찍 가면 한산하리라는 예상은 입구에서부터 무너졌다. 지인과 함께 갔을 때는 이미 통로마다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듯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고, 인기 부스 앞에서는 줄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가늠이 안 됐다. 토요일도 매한가지였다.
행사 시작 전부터 코엑스 주변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오전 7시대에 이미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는 인증 글과 사진이 SNS에 잇따라 올라왔다는 보도를 보고는 내가 본 풍경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다. 18개국 538개사가 참여해 역대 최고 흥행이 기대된다는 소식처럼, 올해 도서전은 규모도 인파도 예년을 훌쩍 넘어서는 듯했다.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다 여기에 모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세 번 모두 다녀오고 나서 깨달은 건, 도서전이 점점 책을 '고르는' 공간에서 책을 '쟁취하는'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줄을 서고, 인파에 떠밀리고, 원하는 부스에 닿기까지 체력을 써야 하는 일.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호모 두두리라는 거창한 주제 아래, 정작 현장의 가장 압도적인 풍경은 '질문을 벼려내는 인간'이 아니라 '줄을 서는 인간'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줄의 끝에서 책을 만났다
올해 도서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실 책이 아니라 굿즈 앞의 줄이었다. 유명 출판사 부스 앞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신간보다 캐릭터 콜라보 굿즈나 키링인 경우가 많았다. 민음사 부스 앞 줄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출판사들도 이런 줄서기 자체를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하는 듯했고, 굿즈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사람들의 후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나는 회의였다. 도서전의 주인공이 책이 아니라 굿즈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약간은 시니컬한 마음. 줄을 서서 받은 키링을 가방에 달고 정작 손에 든 책은 한 권도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호모 두두리'라는 인간 선언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AI 앞에서 질문을 벼려내자는 주제와, 키링을 받기 위해 하루를 비우는 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어 보였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마음도 있었다.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은 요즘, 이 풍경을 마냥 가볍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소설과 시집을 둘러싼 상담이 도서전 현장에서 활발히 이어졌다는 걸 보면, 책이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굿즈를 받으러 왔다가 시집 한 권을 손에 쥐고 나가는 사람도, 시집을 사러 왔다가 자연스레 굿즈 줄에 합류하는 사람도 결국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무엇이 먼저였든, 책 쪽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자리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굿즈를 매개로 모인 인파가 정말로 '책 읽는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는 걸까, 아니면 도서전이라는 행사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 소비처가 되어가는 신호일 뿐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도서전이 끝난 지금도 그 줄의 길이가 자꾸 떠오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데려온 계절들
그 줄 앞에서 회의와 애정 사이를 오가던 마음을 안고, 나 역시 이번 도서전에서 여러 권을 데려왔다. 문학동네에서는 김애란의 『안녕이라 말했어』와 고영민 시인의 시집 『햇빛 두 개 더』를 샀다. 뜨인돌에서는 헤르만 헤세 시리즈를 골랐고, 민음사에서는 김이듬 시인의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를, 그리고 고명재 시인의 신간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을 손에 넣었다. 그 외에도 부스마다 나눠주거나 판매하는 굿즈를 몇 개 챙겼다는 걸 숨기지 않겠다. 결국 나도 줄의 일부였다.
시집 두 권이 한 번에 손에 들어온 건 이번 도서전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여기에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 사정이 있다. 나는 한 매체에서 '시집이 다시 읽히는 시대, 시인은 무엇을 씁니까'라는 주제로 시인 인터뷰 연재를 진행해왔다. 김해솔, 김보나, 고명재 세 시인과의 인터뷰를 모두 마쳤다. 매번 질문지를 만들고, 시집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시인 앞에서 그 질문을 풀어놓는 일을 반복해왔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집은 한동안 '취재 대상'이었던 셈이다. 좋아서 읽는 책이라기보다, 좋은 질문을 뽑아내야 하는 텍스트에 가까웠다.
그래서 도서전에서 산 시집들은 일이 아니라 순전히 애정으로 고른 책이었다는 게 더 각별했다. 고영민 시인의 『햇빛 두 개 더』도, 김이듬 시인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도 원래부터 좋아하던 시인의 책이라 소장하고 싶어서 산 거였다. 인터뷰로 만난 고명재 시인의 신간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도 같은 마음으로 데려왔다.
인터뷰로 시인을 만나는 일과 도서전 부스에서 그 시인의 시집을 직접 골라 드는 일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감각을 준다. 전자가 질문을 준비하는 긴장이라면, 후자는 그저 표지를 넘기며 첫 문장을 확인하는 순전한 즐거움에 가깝다. 한동안 시집을 일로만 만나왔던 나에게, 이번 도서전은 오랜만에 독자로 돌아가 좋아하는 시인의 책을 그냥 좋아서 사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책
화려한 인파 뒤편에는 다른 풍경도 있었다. 도서전을 다녀오기 전부터, 참여를 신청했다가 떨어진 소규모 출판사들이 인스타그램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여러 번 봤다. 단순히 공간이 부족해서 떨어졌다는 불만이 아니었다. 핵심은 선정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것, 그리고 출판과 무관한 대기업이 큰 부스를 차지하는 동안 정작 책을 만드는 작은 출판사가 밀려난다는 것이었다.
그 글들을 보고 나서 찾아본 기사에 따르면, 부산의 독립출판사 발코니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참가해오다 올해 탈락했다.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출판인 단체 소속이면 선정에 가점이 있다고 들어 회비를 내고 가입까지 했는데도 떨어진 반면 정작 그 단체 소속도 아닌 대기업은 참여한다는 사실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난해 처음 참가해 독자들과 "내년에 또 만나자"고 약속했던 터틀넥프레스 역시 올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도서전이 2024년부터 몇몇 개인이 주주인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됐다는 사실도, 공공성에 대한 의구심에 불을 붙인 배경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따로 자신들만의 도서전을 열었다고 한다. 도서전 상업화에 반발한 출판사 50여 곳이 같은 크기의 부스를 내고 독자를 만난 '서울제대로도서전'은, 서울국제도서전이 다양한 독자와 출판사를 끌어안는 데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행사였다. 노들섬에서 무료로 열린 이 도서전에는 계수나무, 느린서재, 봄날의곰 등 50여 개 출판사가 조건 없이 참여했고, 모든 참가사가 동일한 면적의 부스를 사용했다. 터틀넥프레스는 따로 '거북목도서전'을, 발코니는 '서울한평도서전'을 각각 자기 이름을 걸고 열었다.
나는 이 도서전들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같은 6월 같은 서울 안에서 두 종류의 도서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들의 주장에서 흥미로웠던 건, 단순히 서울국제도서전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서울제대로도서전 홍보를 맡은 한 출판사 대표는 이 행사의 목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올해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진짜 공공성을 되찾는다면, 자신들의 도서전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거라는 뜻이다. 책에는 공공재의 성격이 있고, 도서전은 독자가 몰랐던 작은 출판사의 책을 발견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말도 함께 남겼다.
이 대목에서 나는 '호모 두두리'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안전한 답을 거부하고 미지의 질문을 던지는 인간을 선언하는 도서전이, 정작 가장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져온 작은 출판사들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못했다는 사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아직도 정리가 안 된다. 화려한 주제 전시와 줄 선 굿즈 부스 사이에서, 정작 가장 '두두리'다운 출판사들은 노들섬과 을지로와 마포로 흩어져 각자의 도서전을 열어야 했다.
서울국제도서전 측도 내년에는 코엑스 A홀과 B홀을 모두 확보해 공간을 30% 정도 늘리고 참가를 희망하는 출판사를 더 폭넓게 수용하겠다고 밝혔다고 하니, 흥행과 공공성이 한 행사 안에서 부딪히지 않고 같이 갈 수 있을지는 내년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두두리에게
도서전을 세 번 돌고 나서 남은 질문은 결국 이거였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쓰고 있는가. 처음엔 의심했던 '호모 두두리'라는 주제가, 도서전을 다 둘러보고 나니 조금 다르게 읽혔다. AI가 질문을 던지면 곧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시대에, 굳이 줄을 서서 시집을 사고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읽는 행위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선택이고 의지라는 걸 확인했다.
동시에 그 인파 안에 굿즈를 향한 줄과 작은 출판사들이 밀려난 빈자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도, 이 주제가 그저 멋진 수사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요즘은 거의 모두가 독자이자 동시에 작가다. SNS에 한 줄을 올리는 것도, 굿즈 인증샷에 짧은 문장을 곁들이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쓰는 행위다. 그 안에서 진짜 텍스트와 텍스트의 모양만 한 것을 가르는 일은 점점 더 각자의 몫이 되어가는 듯하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과 쓰고 있는 것 사이의 거리를 자꾸 가늠해보게 된다.
호모 두두리라는 주제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것도 아마 그 지점이었을 것이다. 안전한 답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벼려내는 사람. 그 질문에는 도서전을 만드는 사람들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 도서전은 또 어떤 주제로, 어떤 풍경으로 우리를 맞을지 벌써 궁금하다. 줄이 좀 짧아져 있기를, 그리고 더 많은 작은 출판사들이 같은 자리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기를, 굿즈보다 책이 먼저 손에 들리는 줄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그래서, 호모 두두리는 배신당했는가 증명되었는가. 둘 다였다고 답하겠다. 줄을 서는 인간과 질문을 벼려내는 인간, 굿즈를 향한 줄과 시집을 향한 손, 흥행하는 도서전과 자리를 빼앗긴 도서전들이 같은 닷새 동안 같은 도시 안에 공존했다. 그 모순을 모순으로 남겨두는 일, 어느 한쪽으로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두두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슬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