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곡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클래식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에, 파가니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나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본 몇몇 대표곡이 전부였다. 지금도 파가니니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 ‘악마’와 관련된 댓글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뮤지컬 <파가니니>를 보게 되었을 때, 그의 뛰어난 천재성이나 그런 종류의 천재들에게서 으레 느껴지는 일종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 내 예상과 다르게 <파가니니>는 1840년 파가니니 사망 직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오명 탓에 교회 공동묘지 매장을 불허 당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작품은 아버지의 안식을 위해 긴 세월 외로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 아들 ‘아킬레’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었다.
극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종교재판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루치오 아모스는 유명한 이단 심문관으로 파가니니가 악마라는 고발을 듣고는 그를 추적하게 된다. 루치오는 종교적 맹신으로 가득 차 보이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이 신의 뜻을 제대로 행하고 있는지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과 회의감을 신앙으로 이겨내는(혹은 억누르는) 모습은 당시의 종교 문제와 더불어 해당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루치오에 파가니니를 믿어주는 샬롯과 그를 고발한 콜랭까지 더해지면 파가니니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완성된다. 그를 진정으로 악마라 생각하는 사람, 그의 음악과 진실성을 믿어주는 사람, 진실엔 관심 없고 오로지 흥미와 돈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까지. 파가니니가 주인공이자 중심이면서도 어쩐지 그보다는 타인의 이야기가 더 깊게 전개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파가니니와 신부의 대립, 악마로 몰리면서도 여전히 연주를 이어나가는 파가니니의 모습을 보며 극의 내용이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그가 생전 여러 소문을 몰고 다녔고 말년에는 여러 질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 카지노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의외로(?) 아들 아킬레를 몹시 사랑하며 극진히 키웠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그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러한 천재 예술가의 화려한 삶이나 여러 추문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측면이나 고독, 예술을 향한 순수함에 집중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 파가니니를 고발하고 루치오를 조롱하는 콜랭이야말로 사실상 가장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그는 수완 좋은 사업가에 불과하고 파가니니야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으로 비친다. 뮤지컬 속 사람들이 파가니니를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천재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로 인식하게 되는 지점 또한 씁쓸함을 남긴다.
파가니니가 자신에 대한 말이 하도 많으니 악마 소문을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마케팅의 일종으로 악마 콘셉트를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를 오만한 음악가로 생각하든 음악에 열정을 바친 비극적 인물로 생각하든 파가니니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가 거짓 고발로 인해 악마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죽어서도 그 때문에 제대로 안치되지 못했던 이야기를 보고 나니 그를 한마디로 딱 잘라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