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무지라는 말은 수치에 가깝다기 보다 영광스럽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발로 뻥 차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수치에서만 멈춘다면 다행이지, 불안과 걱정으로 점철된 종말만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가만히 앉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를 유기하는 것과 결코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쉽고 간결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은 과거를 직면하는 것이다. 물론 ‘만약에’라는 말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 하지만 어느샌가 알게 모르게 무지를 귀히 짊어진 인간에게는 과거가 끝없이 되풀이되며 평안이라는 두 글자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
그 방대한 우주 속에서 찰나의 시간을 살았던 인류 역사조차도 비일비재한 사건이 발생하고 충돌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없이 많은 정치적 경제적 카르텔로 잔혹사가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어 가고 있다.
경쟁의 구도를 피하는 것은 인간의 내재된 본성인 만큼 어려운 일인 듯하다. 과거 역사 속에서도 경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회는 발전하기도 했고, 반대로 정신적·육체적으로 퇴보하기도 했다.
발전도 퇴보도 미래를 위한 양분이 될 수 있다. 무지를 명분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 무지를 알고 과거를 직면해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꾸리는 것, 이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도 한층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었기에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 싶은 몇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무한한 예술, Timeless
나는 예술 그것도 순수 미술에 있어서는 ‘Timeless'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패션부터 문화 모든 것이 유행 선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전체를 아우르는 예술은 이 궤도에서 한참 벗어나 우리의 곁을 든든히 보좌하고 있다.
현재도 많은 예술가들이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지만 과거만큼 가치를 드러내고 지켜낼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만큼 경제적 지원이 뒷받쳐 주지 않는 한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뒤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내가 방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술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사람을 보면 동경의 감정이 피어나고 눈이 반짝여진다.
특히나 건축, 조각이라는 수작업을 다루는 분야일 경우 더 그렇다. 눈이 무의식적으로 반짝이는 기분이 들고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경이로움을 좀처럼 감추기 힘들다.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프랑스 칼레라는 곳에 위치해있는 조각상이다. 사실 로댕은 사생활 면에서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뛰어난 실력과 천재성이 인간성과 절대 비례하지 않듯이 그는 굉장히 난잡한 삶을 살았다.
이를 차치하고, 로댕이 창조한 <칼레의 시민들>은 당대 만연했던 영웅상을 한 번에 뒤집어놓는 경험을 선도했다. 영웅을 상징하고 칭송하기 위해서는 거룩함을 빼놓을 수 없었던 이전과는 달리, 현실에 부딪혀 끝없는 두려움을 표하더라도 자신의 책무를 마다하지 않는 영웅을 표현하고 앞세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관념을 재창조한 것이다. 수두룩한 시대의 압박과 비난을 묻어두고 자신의 고집과 관념을 꺾지 않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시야를 바꾸고 울림을 인도해 아직까지 많은 사람이 상상을 구현해 낼 수 있도록 밀어붙였다.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레오나르도 그리고 그와 라이벌 관계이자 자신의 아집을 저버리지 않았던 미켈란젤로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공하려 애를 쓰다 결국 안타깝게 이승을 떠나버린 안토니 가우디까지.
그토록 많은 예술가의 뜻과 발자취, 그리고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예술 향유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배움이라는 특권 또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는 “인류와 그들이 만들어낸 부산물들이 빼곡하게 모여 쉼 없이 변화해 온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더 많은 예술을 장려하고 지원하지 못하는 현실이 석연치 않은 공백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이공 계열이 아닌 문학, 철학, 사학 그리고 예술은 부유한 자만이 도전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고여있는 늪이 되어버린 것 같다.
후에 조금이라도,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많은 이들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어, 비록 과거 르네상스 시대만큼은 아닐지라도 예술이 다시 번영하고, 편견 없이 그 변치 않는 무한한 가치를 향유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다르다는 것
‘살색’이라는 잘못된 표기를 버리고 ‘살구색’이 채택되었듯, 우리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강조하는 다인종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양극으로 치솟아 다르고 달라 이해하고 쉽게 존중받기 힘들지만, 때로는 ‘문화’라는 본연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추종하며 즐기기도 한다.
그리하여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가 열린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여러 생각과 취향이 공존하고, 그 끝에 서로 다른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이룬다. 다름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고, 국가가 세워지고, 비로소 세계가 발돋움한다.
그러나 다름의 공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의 대가를 치른 끝에 가능해졌기에, 마치 피 웅덩이와 시신이 널린 들판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도 아슬아슬하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 같아 냉혹한 현실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과거 미국에서 벌어졌던 다름을 향한 공격,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을 내세우며 명성을 취하려 했던 'KKK'. 이들의 잔혹성과 흑인을 향한 절대적 분노는 이루 말할 것이 없었고 미국 사회의 많은 흑인은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었다.
이러한 극단적 단체에 맞서기 위해 ‘마틴 루터 킹’과 ‘맬컴 X'가 등장했다. 백인 우월주의에 맞서 흑인의 실질적 권리를 되찾는 것이 그들의 동일한 지향점이었지만 추구하는 방식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맬컴은 비폭력 시위를 주장하는 킹 목사를 ‘우리를 배반한 반역자’라 칭하며 백인 중심 사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백인과 흑인의 이해를 통한 공존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흑인 우월주의를 통해 많은 흑인의 지지를 모아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백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분개하는 나날을 보내던 맬컴은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할 것을 무척이나 강조하며, 킹 목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갔다. 공존에 대한 신뢰가 0에 수렴했던 맬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말년 괴한에게 암살당하기 직전의 맬컴은 ‘다름’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며 인종과는 관계없이 친절한 무슬림 신도들을 보고, 모두가 공존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때 맬컴은 백인이 악마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흑인의 실질적 권리를 되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근거 없는 차별과 공격, 그로 인해 지울 수 없는 공포를 겪었던 맬컴이 백인에 대한 분개심을 억누르고 공존의 시작점, 평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맬컴’과 같은 극단적 사상에 동조되지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나는 자신이 없다. 증오라는 감정은 짙은 농도로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번개 같은 속도로 이성적 판단의 눈을 멀게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되갚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글쎄.’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맬컴의 분노와 백인 중심 사회를 향한 아우성은, 결국 그를 낭떠러지 끝까지 몰아세운 거대한 사회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토록 유명한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워싱턴 D.C 연설이다.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석한 킹 목사는 흑백이 공존하는 미국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굳건한 의지를 표했다. 킹 목사의 연설과 강직한 의지는 흑인 민권운동의 불을 붙였다.
안타깝게 킹 목사도 연설 도중 괴한에 의한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다. 현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생일 1월 21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다인종이 공존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로 삼고 있다.
동일한 이상을 향해 꿈을 키워왔지만 다른 방식으로, 결국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없었던 두 사람. 현재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와 평등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그것이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마음속의 가치로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 과연 우리는?
가톨릭과 신교도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중세 ‘종교전쟁’, 종교를 명분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며 신의 뜻을 따른다고 했지만, 실상은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경제적·심리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뒤얽혀 있었다.
혹자는 이 전쟁을 종교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치적 권력 싸움, 그리고 희생당한 군중의 비극이라 부른다. 이익을 위해 존중되어야 할 타인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세상 곳곳에는 수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크든 작든 규모와는 관계없이 항시 사람 곁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이 아주 작은 소규모의 갈등들이 큰 불길로 퍼져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기도 한다.
갈등의 근원적인 본거지를 찾는 것은 난해지극일 것이다. 프랑스의 종교전쟁이 이름은 종교전쟁이지만 실상 권력의 우위를 범하기 위한 거대한 내전이었던 것만큼
갈등의 근원이란 베일에 깊숙이 가려져 있어, 쉽게 파헤치는 일도 완전한 종전을 이루는 일도 모두 힘에 부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관용"이다. 프랑스어로는 ‘똘레랑스’라 일컫는다. 관용은 서로에 대한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종교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과거 프랑스는 관용이라는 자세를 본받으며 ‘자유의 나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중세의 참혹했던 종교전쟁을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분쟁은 사람의 감정을 바싹 말리고 정상성에서 한참이나 벗어나게 한다.
놀라운 점은 아직도 이란과 이스라엘에서 중동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리적 전면전은 볼 수 없어도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갈등은 여전하다. 정말 두려운 점은 초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며 AI를 활용한 첨단 신식 무기까지 가세해 사람의 생명을 쉽게 앗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관용의 자세는 누군가를 위한다기보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태도라고 느껴진다. 간결한 것처럼 느껴지는 두 글자 단어를 시도하지 못해서 수백 명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참혹하고 냉정한 현실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세월이 변하고 속절없이 흘러도 모두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을 것 같다. 우리는 관용을 위해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을 묵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만 할 것이다.
그 다툼의 씨앗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의 땅 아래에서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