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안 사이코>.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표지는 간결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입던 드레스, 소매가 구름처럼 부푼 새빨간 드레스, 하지만 아랫단이 점차 어둠에 물들기 시작한 기묘한 드레스 한 벌이 홀로 서 있다. 책장을 넘겨본다. 아, 이런. 내지 첫 장 하단에 미처 닦아내지 못한 검붉은 핏자국이 동그랗게 묻어 있다. 마저 장을 넘기는 것이 조금 주저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꾹 참고 펼쳐본다. 그다음 장, 책의 목차도 채 안내되기 전에, 한 거대한 저택의 그림을 배경으로 누군가의 선언문이 적혀 있다.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표1_띠지_빅토리안 사이코.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24185147_dbddwpzh.jpg)
<빅토리안 사이코>는 ‘고딕 블랙코미디의 마녀’라고 불리는 작가 버지니아 페이토의 화제의 새 장편소설이다. <뉴욕 타임스>, <뉴요커>, <타임> 등의 주요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미국독립서점협회에서도 기대작 1위에 올랐다. 영화화까지 이미 진행되어 해당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2026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상영작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해당 영화는 오는 9월에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작품 속 크리스마스를 세 달 앞둔 어느 날, ‘위니프레드 노티’는 어린 남매를 가르칠 가정교사로 엔저 저택에 초대된다. 파운즈 씨와 파운즈 부인, 부부의 자식인 앤드루와 드루실라가 이 오래된 중세 저택의 주인 가족이다. 노티는 남매에게 프랑스어 및 바느질 같은 교양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돌본다. 앤드루가 잃어버린 양철 군인 장난감도 찾아주고, 부모에게 혼나 낙심한 드루실라의 고민도 들어주며, 아이들이 잠들 때면 머리맡에서 잠자리 이야기도 들려준다. 신문에 가정교사 구직 광고문을 실을 때 썼듯이, 그녀는 ‘아주 상냥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책의 바깥에서 노티의 행적 뒷면에 숨겨진 진실을 따라가는 독자의 시야에서는, 이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하면서도 과감한 외줄을 타고 있는지가 명확히 들여다보인다. 위니프레드 노티. 그녀는 사실 잔혹한 사이코패스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달랐다.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선과 악이 무엇이며 사회규범이란 또 무엇인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뒤틀려 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동물과 어린아이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착한 아이‘라고 말해줘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노티는 그렇게 했다. 엔저 저택에 도착한 첫 아침에, 부엌에서, 재료로 준비된 잘린 송아지 머리를 들고.
그런 노티는 생명을 해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고, 설령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역시나 그녀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노티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새 학생이 될 어린 남매를 만난 첫날, 노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많은 일을 겪고 어른이 된 지금의 노티는 어느 정도 감정을 연기할 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그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뒤집어써 주변인의 경계심을 낮춘다. 꾸며낸 달콤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낼 줄도 안다. 그리고 그녀 안의 잔혹한 어둠이 충동적으로 꿈틀거릴 때면, 원하는 때를 위해 참고 기다릴 줄도.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엔저 저택을 향해 다가오며 되뇌었던 ‘그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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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학살극 소설은 아니다. 위니프레드 노티라는 캐릭터의 뒤에 숨겨진 작가의 메시지는 이렇다. “악은 타고난 것인가, 환경에 의해 길러지는가.” 노티는 고루한 사상이 지배하는 옛 빅토리안 시대의, 가난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여성이다. 이 설정의 조합은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시대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약자의 총대변인이다.
그렇다고 작품이 그런 배경들을 이용해 그녀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그저 과감하고도 유쾌하게 자신만의 복수극을 이끌어나갈 뿐이고, 작가는 뒷면에서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단서처럼 툭툭 던져준다. 가령 노티와 노티의 어머니를 버리고 간 아버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여자들, 훈육을 위해 자식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무지함, 가난의 잔인함 따위는 모르는 풍족하고 멍청한 귀족들, 계급으로 처우가 나뉘는 인간들 같은 이야기들을.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과연 어떨까. 악은 타고나는 것일까, 환경에 의해 길러지는 것일까. 혹은 둘 모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