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말하면 종종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중국 드라마는 항마력이 필요하지 않아?" 처음에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낯설 정도로 긴 호흡의 전개, 예상보다 훨씬 직설적인 감정 표현, 때로는 웃음이 나올 만큼 과장된 연출까지. 어떤 장면에서는 진지해야 할 순간인데도 민망함이 먼저 밀려오기도 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은 마음으로 몇 번이나 재생을 멈추려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어색하고 낯설었던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어느새 또 다른 작품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처음에는 웃기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점점 익숙해졌고, 답답하다고 느꼈던 감정의 호흡은 오히려 인물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항마력을 길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표현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항마력이란 단순히 유치함을 참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낯선 세계의 문법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 현대극 ‘난홍’과 고장극 ‘축옥: 옥을 찾아서’였다.

‘난홍’은 헤어졌던 첫사랑이 다시 만나며 시작되는 재회 로맨스다. 언뜻 보면 로맨스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흔한 설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고, 상처를 설명하기보다 침묵 속에서 상대를 바라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수많은 망설임과 우회가 이어진다.
요즘 10~12화면 끝나는 빠른 전개 속도의 한국 드라마에 익숙해진 우리는 보다 보면 이들의 전개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말 한마디면 될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사랑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중요한 감정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사랑하면서도 머뭇거리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한 걸음 물러선다. ‘난홍’은 그런 미완의 감정들을 조급하게 결론짓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를 다시 믿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아주 차분한 속도로 묵묵히 따라간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극적인 사건보다 사소한 시선과 작은 배려가, 그리고 마침내 이어지게 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더 큰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온다.

반면 ‘축옥: 옥을 찾아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부모를 잃고 가장이 된 푸줏간 딸 번장옥과 신분을 숨긴 채 복수를 꿈꾸는 후작 사정의 만남은 계약 결혼, 권력 다툼, 전쟁, 복수와 같은 고장극 특유의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에는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고, 충성과 배신이 극단적으로 오가며, 감정은 현실보다 훨씬 선명한 색채를 띤다. 그러나 몇 화를 지나고 나면 그 과장마저 하나의 언어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고장극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감정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장르다. 현실에서는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과 신념, 책임과 희생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특히 번장옥은 누군가의 보호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난홍’과 ‘축옥’은 전혀 다른 시대와 장르를 배경으로 하지만 묘하게 닮아 있다. 하나는 감정을 천천히 쌓아 올리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거침없이 폭발시킨다. 그러나 결국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지를 이야기한다. 사랑은 때로 너무 늦게 도착하고, 누군가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기도 한다. 방식은 달라도 그 안에는 결국 사랑, 삶, 사람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은 이런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취향이 되는지도 모른다. 뮤지컬을 처음 접한 사람은 왜 갑자기 대사를 하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지 어색해하고,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던 사람은 과장된 표현 방식에 낯설어한다. 하지만 그 세계의 문법을 이해하는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과 그들만의 고유한 표현방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어 웃으며 보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등장인물의 행복을 바라고 그들의 선택 앞에서 울고 웃게 된다.
취향은 처음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낯설고 어색한 시간을 통과한 끝에 비로소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중국 드라마의 매력은 완벽하게 세련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낯섦을 견디고 난 뒤에야 발견할 수 있는 진심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운 예술의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된다. 혹시 이번에도 나의 취향이 될 또 다른 새로운 낯섦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