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색이 짙은 단막극 한 편을 시청한 기분이다. 제목을 짓는다면 ‘모네의 가리워진 시간들’이 좋겠다. 그저 유한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비하인드씬을 목격한 이후로 모네의 그림이 전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이 치열하고 애달픈 데가 있어 보다 보면 그 진심이 전해져 마음이 찌르르 울린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인상주의도 애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내게로 스며들었다. 정말 좋은 건 그렇게 오나 보다. 이 책은 마치 영원토록 사랑받을 드라마 같다. 열정적인 빛의 화가였다고, 미치도록 빛나는 인간이었다고 모두에게 회자될 그런 드라마.




클로드 모네가 쫓던 빛의 정체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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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클로드 모네. 그의 나이 여든 여섯이었고 남긴 작품만 해도 2,500점이 넘는다. <모네, 빛의 순간들>은 그 장엄한 예술적 여정의 기념비와도 같다.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모네의 대표작 100점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주로 따뜻한 풍경화를 그리는 인상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모네는 사실 그 작품 속에 자신이 포착한 찰나의 빛을 구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걸 던진 사람이다. 빛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캔버스를 들고 어디로든 떠났다. 작품은 늘 그의 치열한 삶과 나란히 갔다. 지독한 가난과 가족을 상실한 슬픔, 시력을 잃는 고통은 모네에게 슬럼프를 안긴 동시에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섬세하게 구축하였다.


책은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미술 이야기에 절묘하게 녹여내는 저자 박송이의 통찰력은 모네의 삶의 궤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여 우리가 그의 예술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고화질 도판으로 작품의 역동적인 붓 터치까지 만나볼 수 있어 더욱 풍성하게 그림 감상을 할 수 있다.


<모네, 빛의 순간들>을 통해 그가 만든 드라마틱한 빛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삶의 타임라인을 따라 확장된 인상주의


 

 

르아브르, 파리, 런던 시기(1858~1870년)

아르장퇴유, 베퇴유 시기(1871~1882년)

지베르니 초기 시기(1883~1892년)

지베르니와 유럽 각지 시기(1893~1913년)

지베르니 말기 시기(1914~1926년)

 

 

<모네, 빛의 순간들>은 클로드 모네의 삶을 위의 다섯 시기로 나누어 그의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를 거쳤으며 그 과정에서 ‘인상주의(Impressionism, 있는 그대로의 대상 재현이 아닌 대상에서 포착한 순간적·주관적 인상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중심의 예술 경향)’라는 흐름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조명하고 있다. 초기작부터 말년작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미술 사조를 따르지 않던 모네의 독자적인 추구미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르아브르: 화가로서의 여정 시작

  

 
평생의 은인 ‘부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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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인생에서 ‘외젠 부댕’을 빼놓을 수 있을까. 넉넉한 집안 형편으로 일찍이 다양한 인쇄물을 접했던 10대 시절의 모네는 교과서에다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모네가 지역 유지였던 ‘망숑’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레옹 망숑의 캐리커쳐>는 르아브르의 화방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를 보게 된 화가 부댕이 모네의 반짝이는 재능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다 운명처럼 모네와 부댕은 화방에서 마주치게 되고 이 만남은 훗날 클로드 모네의 예술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모네는 스승 부댕과 함께하며 눈앞에 있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풍경화가로서 첫 걸음을 뗀다. 그런 면에서 <루엘 풍경>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모네가 완성해낸 유의미한 첫 번째 야외 풍경화다.

 

 
모델이 되어준 연인 '카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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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에게 있어 ‘카미유’는 둘도 없는 작업 파트너였다. 그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연인 카미유는 모델료를 아껴주기 위해 혼자서 등장 인물 네 명을 소화해내며 모네를 도왔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완성한 <정원의 여인들>은 모네의 초창기 작업 중 가장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



2. 아르장퇴유: 인상주의 전성기

 

 
빛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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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불전쟁으로 런던에 피신을 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 가족은 파리 근교 마을인 ‘아르장퇴유’에 정착하게 된다. 이곳에 머물렀던 6년 동안 그는 센강 변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는 모네가 센강 수면에 비친 것들과 그것이 주는 인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 결과물이다. 벽지보다 못한 미완성작이라는 독설도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비평은 인상주의라는 새 화풍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정리하러 간 르아브르는 모네에게 다시 좋은 영감이 되어 주었다. 전쟁과 피난을 겪고 어느새 가장이 된 그에게 고향 같은 이곳의 바다는 훌륭한 작품 소재였다. <인상, 해돋이>는 떠오르는 태양의 강렬한 색채 충돌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후 모네는 <양산을 쓴 여인: 카미유와 장>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자신이 평생 그림에 담고자 했던 공기의 흐름을 포착한 ‘순간성’을 표현해냈다. 특히 이 작품은 모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정도로 인상주의 철학(색채는 주변 환경에 의해 계속 변화한다)이 짙게 담겨 있다.

 

그러다 그는 배 위에 작업실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던 빛의 일렁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선상 스튜디오>는 어떠한 비난도 없는 곳에서 대중이 아닌, 화가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 고립을 자처하며 그가 탄생시킨 작품이다.



3. 지베르니 초기: 정착과 연작의 시대

 

 
카미유를 떠나보내고 계속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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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에서 색감의 조화를 찾아내려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한 순간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는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를 통해 자신이 아내를 상실한 보통의 남편이기보다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 싶어하는 어쩔 수 없는 화가임을 깨닫게 된다. 카미유의 죽음은 모네가 자연과 빛의 세계로 더 깊숙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인물화는 작업하지 않았지만 그는 의붓딸인 쉬잔을 다시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누구보다도 모네의 예술관을 깊이 이해해준 아이였으나 쉬잔 또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모네의 슬픔과 <오른쪽으로 돌아선 양산을 쓴 여인>의 한없이 맑고 따스한 분위기가 충돌하여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1880년대의 모네는 원하는 빛을 찾아 기꺼이 그 현장에 뛰어들며 자신의 것을 쌓아나갔다. 고되고 치열했던 날들을 마무리하고 그는 마침내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을 <지베르니의 봄>과 같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4. 지베르니와 유럽의 각 지방: 물의 정원과 수련

 

 
고정된 대상으로 빛의 변화를 실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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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모네는 고정된 대상들을 하나의 시험 도구로 사용하는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의 변화를 포착하는 일과 같았다. 가만히 자리에 있는 건초더미는 세부묘사가 필요 없을뿐더러 그 표면에 내려앉는 빛을 관찰하기에 제격인 실험 물체다. 다른 시간과 다른 계절 속에서 같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려내자 빛의 산란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건초더미>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모네는 노르망디의 도시 루망으로 떠난다. 루앙 대성당이라는 견고한 대상을 통해 빛의 속도를 추적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성당이 자신을 덮치는 악몽까지 꿀 정도로 몸과 마음이 고통스러운 실험이었지만 결국 그는 대상에 반사된 빛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루앙 대성당, 맑은 오전>으로 증명해냈다.

 

 
원하는 빛을 구현하기 위해 풍경을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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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는 오래된 걱정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 의지와는 별개로 관찰 대상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이었다. 여기에 예술적 주도권이 타인의 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것 또한 그의 불안을 거들었다. 모네는 결국 통제가 가능한 자신의 이상향을 건설하게 된다. 자택과 정원을 매입하고 철길 너머의 부지까지 사들여 자신만의 물의 정원을 구현한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수련까지 심어 수면 위로 생기는 빛과 색채의 변화를 마음껏 누렸다. <수련, 녹색의 조화>에는 빛을 향한 모네의 집념이 짙게 깔려있다.

 

 
대파괴의 시기를 겪다
 


늘 그랬듯 모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닌 대상 주위로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이었다. <수련>을 작업하는 동안 그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면 때문에 쉽게 예민해지곤 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순간을 손이 따라가지 못해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또한 직사광선에 노출된 채 종일 연못가에서 작업을 하느라 눈에 이상이 생기기 도 했다. 자기검열도 심해져 그림을 찢는 일까지 있었다. 고통스러운 대파괴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모네는 결국 이 작품을 완성해냈다.



5. 지베르니 말기: 생의 마지막 걸작

 

 
인생 최대 암흑기에도 끝까지 캔버스를 붙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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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의 <수련>은 철저히 모네의 경험과 기억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 최대 암흑기였던 이 시기는 모네에게 너무나 많은 시련을 안겼다. 대홍수로 인해 모네가 아끼던 정원이 망가졌고, 두 번째 아내였던 알리스와 장남 장 모네가 차례로 생을 마감해 그의 곁을 떠나게 됐다.


거기에 백내장으로 파란색 인지가 어려워지면서 그는 물감 색이름을 보고 팔레트 특정 위치에 색을 고정해두거나 전에 경험했던 기억 속 파란색을 꺼내어 칠하는 식으로 작업을 간신히 이어나갔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은 실제 풍경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풍기고 있다. 어쩌면 그 기운은 가족에 대한 모네의 절절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개별 작품이 연결되는 무한함을 계속 고민했다. 나아가 공간을 작품으로 둘러싸 마치 꽃이 핀 수족관 한가운데서 감상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원형의 방을 꿈꾸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수련> 대장식화는 모네의 상상이 실현된 완벽한 몰입형 공간이다. 8점의 작품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져 거대한 연못에 있는 느낌을 준다.


모네가 평생토록 찾아 헤매던 빛의 아름다움은 많은 세월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닿게 되었다. 그가 무얼 말하고 싶어했는지, 찰나의 빛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들어있는지 아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1926년, 빛의 화가였던 클로드 모네는 눈을 감았지만 그가 꺼내 보인 빛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가슴에 남은 단 하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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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시선은 언제나 밖을 향해 있었다. 자연의 빛, 그 빛에 반응하는 색채, 대기의 질감, 수면에 반사된 풍경 등 자신을 제외한 바깥 세상이 그에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러던 그가 꺼져가는 시력을 붙들고 그린 1917년의 <자화상>은 어딘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다. 모두가 모네의 예술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 때 그는 그저 온몸으로 자신이 믿는 예술을 실천하고 있었다. 빛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작품으로 치열하게 증명해내기 바빴다. ‘척’이 아닌 ‘사랑’으로 말이다. 무너지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자화상에서는 한 인간의 진실됨, 투명한 정직함 같은 것들이 보인다. 다른 작품보다 이 자화상이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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