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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계절과 함께 흘려보내는 마음 - 계절의 이유 [도서]

어느 계절도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by 이소영 에디터
2026.06.13 16:49

 

 

문득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풍경 속에서, 바람의 온도나 빛의 결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느낄 때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지나간 어떤 시절이, 혹은 더는 곁에 없는 누군가가 떠오르곤 한다. 계절은 단순히 날씨가 바뀌는 일이 아니라, 마음 속에 묻어둔 기억이, 떠나간 기억이 다시금 찾아오는 일이기도 한 모양이다.

   

이고은의 에세이 <계절의 이유>는 바로 그 순간들, 계절과 함께 찾아오고, 또 떠나가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계절의 이유_앞표지_도서출판 잔.jpg

 

에세이 <계절의 이유>는 작가가 겪은 상실과 이별의 기억을 사계절의 흐름에 빗대어 풀어낸 50편의 짤막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떠나보낸 강아지 ‘스티치’를 비롯해, 멀어진 여러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의 중심축을 이루며, 작가는 봄의 벚꽃, 여름 숲의 소리, 가을 들꽃, 겨울 눈송이와 같은 계절의 풍경을 통해 그 슬픔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아티스트 그룹 DNDD를 설립하여 전시, 디자인, 출판 등 시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 왔다. 여러 도서의 표지와 삽화, 음악가들과의 앨범 아트워크 협업을 통해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여 온 그가 이번 책에서는 시선을 더 깊은 내면으로 옮겨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반짝이는 빛들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담담하고 소담한 문체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마치 수채화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져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책의 문장들은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의 기억, 마른 잎이 붙어있는 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소리, 도화지 위에 옮겨 담은 바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계절의 묘사가 아니라, 작가가 오래 들여다본 스스로의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서에 따라 배치된 글 사이 사이에는 화가이기도 한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실려있다. 이렇게 글과 그림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한 호흡으로 읽히는 점도 이 책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문장으로 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의 여백을 그림이 조용히 채워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책은 위로의 책이기 이전에 작별의 책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강아지 스티치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멀어진 인연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관계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로 슬픔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이다. 슬픔을 빨리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슬픔이 흘러가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쪽을 택한다. 크고 거대한 사건만이 아니라, 지나치기 쉬운 작은 순간들에도 똑같은 무게의 시선을 둔다. ‘고집스러운 나무’에서 작가는 겨울이 지났는데도 마른 잎을 꼭 쥐고 있는 나무를 보며 그것이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한다. ‘나비가 잠든 시간’에서는 작은 나비의 죽음 앞에서 느낀 서글픔을 그려낸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감정도, 그 사람에게는 분명 하나의 계절을 통과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선의 평등함이 이 책의 메시지를 더욱 진실하게 만든다.

 

 
어느 계절도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문장처럼, 어느 계절은 쓰리게 아프기도, 영영 슬픈 기억만 떠오를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상실을 흘려보내고 나면 우리 마음에도 다음 계절이 찾아온다. 겨울이 가면 다시 꽃이 피고, 새로운 햇살을 만날 수 있다. 슬픔과 아픔도 계절이 오고 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감정을 함께 실어 보낸다면 비로소 그 시간들은 빛나는 삶의 조각으로 남게 된다.


<계절의 이유>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연스레 자기 자신의 계절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의 상실을 보면 떠올린, 아직 마음 한 구석 미련으로 남아있는 무언가, 아픈 기억 또는 붙잡고 싶은 한 시절. 자신이 겪은 이별과 아픔에 작별 인사를 보내는 작가를 보며 독자 또한 깨닫기도 전에 다음 계절을 맞기 위한 한 발자국을 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상실의 끝을 마주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그 다정함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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