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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친 순간 작가의 풍부한 표현력에 감탄했다.

   

시적인 문장들은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모든 구절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그 꽃 앞에 머물게 된다.

 

<계절의 이유>는 사적인 책이다. 그 안에는 작가의 진솔한 내면이 담겨 있다. 홀로 쓰는 비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기도, 작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 책 속에는 작가의 슬픔을 풀어낸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 깊이 내려앉은 슬픔을 담담하게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숱한 아픔과 마주하며 넘어지고 일어섰을지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의 글은 내게 다정한 위로로 다가왔다. 슬픔을 다루어본 사람의 이야기는 앞으로 마주할 계절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목차는 ‘짧은 여행에서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이토록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를 향한 작가의 진심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요리 솜씨가 좋은 작가의 엄마는 우리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나를 응원하시는 엄마가 생각났다.

 

특히 사춘기 시절 엇나갔던 작가의 모습은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은 철없던 중학생 시절, 그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엄마를 보며 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부지런히 학교생활에 임했던 나는 비록 가장 원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목표했던 기준에 부합하는 곳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흑역사로 채워진 그 시절을 무사히 잘 건너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준 엄마 덕분이었다.


작가가 가장 그리워하는 엄마의 음식을 김밥으로 꼽은 부분에서는 유독 시선이 머물렀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이 김밥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 아침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저절로 눈이 떠지곤 했다. 큰 접시에 수북이 쌓인 김밥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졌다. 우리 엄마의 김밥은 조금 특별했다. 하얀 쌀밥이 아닌 거뭇한 흑미밥으로 만든 김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남들과 다른 김밥 색깔 때문에 친구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왜 김밥 색이 다르냐는 말에 괜히 쭈뼛거리기도 했지만, 막상 김밥을 맛본 친구들이 맛있다고 말할 때면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처럼 <계절의 이유>는 오래된 기억을 꺼내어 보게 만든다. 사계절을 함께 통과한 삶의 모든 굴곡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 수많은 기억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매년 계절은 새로운 얼굴로 다시 찾아오며, 흘러간 시간만큼 우리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영원한 슬픔은 없듯이 계절의 흐름에 맞춰 마음속 슬픔도 자연스레 흘러가길 바라본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돌아올 그 계절의 빈자리에 슬픔 대신 기쁨이 채워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 행복하다.’ 그저 이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은 찾아온다. 그리고 슬픔과 괴로움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듯, 이 모든 감정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삶이 된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슬프기만 한 삶도 있을 수 없다. 내가 찾고할 때 행복도, 고통도, 그곳에 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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