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온단 말은 없었는데….
선릉역 지하철 개찰구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을 즈음, 그 문장을 떠올리며 검은색 우산을 펼쳤다. 팍-! 하고 내 손안에 우산이 피어남과 동시에 숨통이 트였다.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니 해는 저물고, 하얀 하늘 안에서 내려온 비에 온도도 조금 떨어졌기 때문이겠다.
오늘도 나는 어디를 가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또 어디론가 가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책방이었다. 좋아하는 공연장의 대표님이 책을 내셨다고 했다. 제목은 『하우스콘서트에 진심』. 인스타그램을 보니 북토크도 한다지? 장소는 일전에 바이올린 공연을 보러 처음 가봤던 최인아책방이었다. 이 소식을 보았을 때, 이런, 나도 모르게 책보다 북토크를 조금 더 궁금해해버렸다.

『하우스콘서트에 진심』은 어크로스의 ‘진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누군가가 오래 아껴온 세계를, 취미와 직업 사이 어딘가에서 천천히 펼쳐 보이는 책들. 이번 책이 들여다본 세계는 하우스콘서트였고, 그 시간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나온 사람은 더하우스콘서트의 강선애 대표였다.
책에는 2002년 시작된 하우스콘서트의 24년 여정과 함께, 연희동의 작은 거실을 드나들던 한 사람이 자원봉사자에서 1호 직원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을 지나 더하우스콘서트를 이끄는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었다.
북토크가 있던 그날 저녁,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앉아 미처 다 읽지 못한 페이지를 넘겼다. 읽는 속도에 신경을 썼다. 너무 빨리 읽으려 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지도 않았다. 손안의 것을 해치워버리듯 넘기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눈에 담기엔 당장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읽을 문장을 연두색으로 칠했다.
노래는 뭘 듣고 있었더라. 아마 클래식은 아니었을 것이고, 친숙하게 여기지만 알아듣지는 못하는 언어로 된 드라마 수록곡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활자를 따라가야 하니 너무 좋아하는 곡을 들으려 하진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옮겨가면 퍽 난감한 일이 아니던가.
책을 읽는 내내 ‘낯섦’과 ‘새로움’이라는 키워드보다는 ‘반가움’과 ‘익숙함’을 느꼈다. 내게 어느새 하우스콘서트는 언제나 궁금한 옆집 소식만 같다. 이번엔 어느 지역 공연을 가시려나. 클래식과 무용이 결합된 무브먼트는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그런 가벼운 호기심을 품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연극이나 문화예술을 즐기지 않던 내가 혜화에 가는 일이 익숙해졌고, 어둑한 공원 한가운데를 지나 예술가의 집 계단을 오르는 일에 설렘을 느끼게 되었다. 늘 처음 보는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남몰래 구면이라 인연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핸드폰 플레이리스트에 공연 하나의 레퍼토리를 담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공연장에 가면 늘 연주자를 향한 기대감만 한아름 안고 있었는데, 이제는 생각할 것이 제법 많아졌다. 오늘은 어디에 앉아볼지, 간식을 몇 개나 먹어볼지,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볼지, 다음엔 누구와 와볼지, 예술가의 집 앞에서는 오늘 누가 버스킹을 할지, 카메라 배터리는 잘 충전해두었는지. 특히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재미나게도 괴롭히고 있다.
클래식 공연을 보는데 뭐 이리 할 일이 많으냐고? 그러게. 그러게나 말이다. 그냥 엉덩이 붙이고, 박수가 사라진 틈에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리 복잡하냐고? 이게 다 하콘 때문이다. 이 공간에 오면 이상하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단 이곳은 어린이집도, 좌식 테이블이 있는 식당도 아닌데 신발을 벗고,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를 찾아 담요랑 방석을 들고 내 자리를 찾아내야 한다. 오늘은 어디에 앉을지에 대한, 어디에 앉게 될지에 대한 고민을 입장과 동시에 시작한다.
일찍 도착해 어느 자리에 앉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주 미묘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고, 8시가 가까운 시간, 사람이 이미 가득 찬 와중이면 체온과 체온 사이를 비집고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후 8시가 지나고, 강선애 대표님이 들어와 오프닝을 열어주시고, 연주자들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음악을 나눠준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짧은 인터뷰와 와인파티가 금세 찾아온다.
나는 주량이 대단히 약한 것도 아니지만, 또 대단히 강하지도 않은, 정말 가성비 좋게 한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타입이라 준비된 와인을 한 번도 마셔보진 않았다. 그런데 북토크가 있던 그날, 처음으로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졸음이 몰려와 머리가 아플 때쯤 마시는 커피처럼, 이상하게 눈 위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그 시간대에 마시는 아주 조금의 알코올이라면, 피로를 나도 모르게 까먹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자놀이 부근에 뻐근하게 머물던 무언가는 어느새 뒷목과 귓가의 열기로 옮겨갔고, 몸은 조금씩 나른해졌다. 서점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뭔가 ‘서점에서 와인을 마셨다’는 사실만으로 조용히 신나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때의 시야는 어땠더라. 생각해보자.
책방 천장에는 오래된 샹들리에가 있었고, 그 아래로 책장과 사람들의 뒷모습 혹은 옆모습, 앞쪽에 내려온 프로젝터 화면이 보였다. 책장 앞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사람들이 내려둔 가방과 빈 플라스틱 컵들이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에는 와인컵이 들려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멀지 않은 간격으로 앉아 있었다.
공연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또렷하게 나뉘는 자리는 아니었다. 책방 안의 사람들은 서로의 기척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앉아 있었고, 진행자와 강선애 대표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도 소근소근 다가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하우스콘서트의 시작으로 흘러갔다. 연희동의 작은 거실, 방석에 앉은 관객들, 연주자와 너무 가까워서 어쩌면 숨소리까지 음악의 일부가 되었을 거리. 강선애 대표는 그 안에서 신발을 정리하고, 와인파티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외국 연주자와 연락하고, 지원금 신청을 제안하던 시간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에서 일하다가 다시 하우스콘서트로 돌아온 과정, 공연을 집 밖의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해 여러 곳을 설득했던 날들, 대표가 되기까지 감당해야 했던 부담과 반대에 대해 차근차근 말했다.
그런 일들은 그저 공연 하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 매번 몸을 움직여온 흔적들이었다. 젊은 연주자들을 일찍이 알아봐 무대에 세우고 그들의 성장을 바라본 기억, 오래 찾아온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쌓아온 관계, 어린 관객들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곁에서 마주한 장면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자주 웃었다.
출판사로부터 ‘진심’ 시리즈 제안을 받았던 때의 이야기를 할 때는 특히 그랬다. 오래 해온 일이 책 한 권으로 불렸을 때, 그는 정말 기뻐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오래 지켜온 마음이 사람의 표정에 먼저 묻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우스콘서트가 다른 공연과 확연히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관객과의 스킨십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관계의 밀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관객과 함께 시간을 쌓아왔다.
매해 아주 조금씩 성장해온 하콘의 시간은 어느덧 20년을 넘겼다. 한 번에 눈에 띄는 변화보다는 돌아보아야만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관객은 하우스콘서트의 곁을 지키며 그 변화의 과정을 목격해온 소중한 존재였다.
— 강선애, 『하우스콘서트에 진심』
그렇게 오래 쌓아온 관계의 시간에도, 바깥에서는 늘 ‘굳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늘 좋은 말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돈도 받지 않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다시 하우스콘서트로 돌아올 때도 쉽게 이해받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자주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굳이 왜 거기까지 가느냐는 말. 굳이 왜 그렇게 자주 보느냐는 말. 굳이 시간을 내서 보고 와서는, 왜 또 쓰느냐는 말.
물론 대개는 걱정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자주 체력 관리에 실패하고, 새벽까지 글을 쓰다 늦게 잠드는 나를 보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부아가 오르다가도 금세 내려간다. 다만 좋아하는 마음 앞에 ‘굳이’가 붙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굳어진다. 뭐라고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방패 하나를 턱 들어버리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은 때로 설명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게 한다. 비 오는 저녁에 책방으로 가게 하고, 방석 위에 앉게 하고, 돌아와 다시 글을 쓰게 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굳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굳이가 오래 버티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런 생각이 빙글빙글 맴돌고 있을 때쯤, 북토크의 다음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방석 이야기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방석이 가장 오래 남았다.
방석은 관객을 객석 번호 안에 앉히는 대신, 바닥 가까이에 앉게 했다. 관객은 연주자를 올려다보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소리와 진동을 함께 받는다. 하우스콘서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가까움. 한 번 앉아본 사람만 안다.

그때의 어린 관객이 성년이 되고, 연희동에 있던 하우스콘서트가 혜화로 자리를 옮기고, 대학생이던 누군가가 어느새 대표가 되는 동안,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관람객 1이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돌아와 쓰고, 다시 공연장에 가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기자’로, 또 누군가에게는 ‘작가’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단번에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공연을 보고, 돌아와 쓰고, 다시 그곳으로 향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어느새 하우스콘서트의 시간을 함께 지나온 관객이자, 그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는 신발을 정리하다가 대표가 되었고, 나는 객석에 앉아 있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