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니 사람뿐이랴. 음악도, 영화도, 드라마도, 대다수의 창작물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랑은 상대가 잠든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이고, 어떤 사랑은 나의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각각이 그려내는 사랑에 여러 말들이 붙는 것을 보면 사랑의 정의는 사랑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 사랑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주인공 배리는 작은 사업체의 사장이다. 멋들어진 양복을 입고 자기만의 사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얼핏 보면 성공한 인생의 본보기 같다. 그런 배리에게는 약간 극성맞은 가족들이 있다. 가족 모임에 빠지지 말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그가 싫어하는 게 뻔한 어린 시절의 별명을 사용하며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직장으로 끊임없이 전화를 거는 누나들의 모습과 결국 도착한 집 안에서의 대화, 가족들이 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가족들과 배리가 지독하게도 맞지 않다는 것을. 배리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희미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가족들 틈에서 스트레스를 억누르는 배리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그는 거실의 창문을 모조리 깨부수고 만다.
이처럼 불안한 그,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분노조절장애 성향을 띠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성이 등장한다.
배리의 사무실 옆 카센터에 자동차를 맡기러 온 여자는 운영시간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주인공에게 차를 부탁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차 키를 맡기고 사라지는 이 여성은, 알고 보니 동생이 소개해 주고 싶어 했던 직장 동료 레나였다.
겨우 성사된 둘만의 저녁식사에서 레나는 말한다. 동생의 가족사진에서 당신을 보았다고. 그때부터 호감을 가졌다고. 배리가 어린 시절 망치를 던져 유리를 깼던 일(그리고 아마도 배리가 가족 내에서 보였을 이상한 태도들)을 전해 들었음에도, 레나는 배리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일부로 차를 놔두러 갔다고 고백하며 적극적으로 배리에게 다가간다.
배리와 레나의 관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레나가 배리의 요청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 내내 배리의 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매형에게 정신과 상담에 대해 말하던 그는 누나들에게 비밀로 해달라 부탁하지만, 며칠 후 동생은 배리의 직장에 찾아와 정신과 얘기는 뭐냐며 캐묻는다. 어디에라도 말할 사람이 필요하답시고 전화한 폰섹스 업체의 직원은 비밀 보장은커녕 배리의 신상정보를 빌미로 협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레나만은 배리가 부탁한 대로 비밀을 지켜주고 남에게 그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감정을 쌓아가면서 배리는 고백한다. 어릴 적 망치를 던져 유리문을 깬 적이 있었고, 당신과 데이트를 하던 중 화가 나서 화장실을 부숴버렸고, 출장이 있다는 말도 당신을 만나러 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폰섹스 업체에 전화했던 일 때문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라고.
기함할 만한 고백을 듣고도 레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저 그런 모습마저 포용할 뿐이다.
배리는 현실적으로 비춰보았을 땐 피해야 마땅한 인물상이다. 이처럼 영화는 주인공의 단점을 극한으로 부각시킨다. 어딘가 이상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 불안해 보이고 폭력적인 사람. 이렇게까지 명확한 문제점을 지닌 인물을 내밀고선 묻는다. 당신은 상대의 가장 밑바닥까지, 최악의 결점까지 사랑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또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가장 밑바닥까지, 최악의 결점까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