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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의 신작 뮤지컬 <펑크>가 5월 31일,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막을 내린다. 2055년, 가상의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노래하는 공연이다.

 

 

클론(복제인간) 2847, 레오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하얀 날개의 천사가 손을 내밀고,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 손가락이 하나씩 떼어지며 끝없이 추락한다.


2055년, AI 아르케가 통제하는 인간의 낙원 '에덴'과 버려진 클론들의 쓰레기장 '인페르노'로 세계가 나뉘었다. 레오는 에덴에 가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시험에서 탈락한다. 그때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 에덴에서 스스로 인페르노로 내려온 인간이 있다고. 모두가 목숨 걸고 올라가려는 그곳을 버리고 쓰레기장으로 온 남자, 글렌. 그는 폐공장에서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레오는 그 음악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늘 뒤에서 레오를 지켜온 친구 클론2848 잭, 그리고 글렌과 함께 에덴에서 내려온 AI 리베르까지 - 인간과 클론과 AI, 넷은 펑크 밴드를 결성한다. 코드 3개, 진심 하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그 음악으로 그들은 인페르노를 변화시키려 한다.


1년간의 연습 후, 밴드는 인페르노 전체를 깨우는 혁명적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이때 AI 아르케가 이들 눈앞에 나타나는데...

 

글렌과 레오, 잭과 리베르는 이 위기를 뛰어넘고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뮤지컬 <펑크> 시놉시스

 

 


나는 노래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살아가며 끊임없이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그 생각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다. 그래서 가끔은 사고를 멈추고, 그저 주어진 길만 따르는 ‘도구적 존재’가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생각의 고통이란 때로 우리를 그토록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이다. 존재의 괴로움과 태어남의 허무를 느끼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통스러운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생각의 괴로움만이 인간성의 증명일까, 괴로움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성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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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년, 지구는 황폐화되었다. 세상은 인간들이 사는 완벽한 에덴과, 인간의 복제품인 클론이 사는 인페르노로 나뉜다. 여기 한 ‘클론’이 있다. 인간의 불완전한 복제품인 클론은 노동을 위해 제조된 도구적 존재다. 주인공 레오는 불완전한 클론들의 수용소인 ‘인페르노’를 벗어나, 기술로 완성된 인간들의 낙원 ‘에덴’으로 가길 갈망한다.

 

“나는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클론의 가치는 오로지 에덴을 위한 노동력에 있습니다.”

 

레오는 에덴에 입성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도구화하는 시험 문구를 주문처럼 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문장을 뱉을 때마다 레오는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다. 자신이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그로 인한 ‘괴로움’. 레오는 클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존재론적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통은 그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자, 클론 역시 인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런 레오 앞에 에덴에서 내려온 인간 ‘글렌’이 나타난다. 글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노래뿐이야’ 라고 말하며 레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기타를 잡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레오는 생전 처음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설명할 수 없는 고양감과 진동이 온몸을 감쌀 때, 레오는 비로소 자신이 온전히 살아있음을 감각한다.

 

살아있다는 사실은 살아있는 자에게 너무도 당연해서 평소에는 그 실체를 느끼기 어렵다. 우리는 삶이 지독하게 고통스럽거나 혹은 눈물겹게 행복할 때, 그 강렬한 감각을 통해 비로소 ‘현존’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에 쓰러질지라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단 한 순간의 행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레오는 글렌을 통해 자신을 다시 일으킬 ‘노래’를 찾게 된 것이다.

 

 

 

펑크(PUNK), 쓰레기들의 혁명


 

삶은 짧은 즐거움으로 긴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며 언젠가 찾아올 ‘진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그 견딤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예술을, 누군가는 사랑 혹은 증오를 붙잡고 버틴다. 뮤지컬 <펑크>의 주인공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제목 그대로 ‘펑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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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간나비

 

 

왜 하필 펑크일까? 작중 펑크는 ‘쓰레기들의 음악’이라 불린다.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음악이기도 하다.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이론 대신, 단순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듣는 이의 심장을 직접 타격하는 데 집중한다. 그들은 음악으로 혁명을 꿈꿨다. 클론들에게 ‘존재의 즐거움’을 가장 직관적으로 일깨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극은 관객들조차 인페르노의 클론이라 부르며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다. 반복되는 일상과 도구적인 삶에 지친 우리에게, 이 공연은 묻는다. 지금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느냐고. 거친 소음과 함성 속에서 느낀 찰나의 즐거움이 마음속에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나는 살아있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펑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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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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