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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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장래 희망 칸 속의 글자는 수시로 바뀌었다.

 

언뜻 보기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심 가득한 아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정말 하고 싶은 무언가’를 아직도 찾지 못했단 뜻이기 때문이다.


꼭 해보고 싶은 일도 시시각각 바뀌었다. 시기에 맞추어 응당 원할법한 것을 바랐다. 초등학생 땐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중학생 땐 자유롭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자연스럽게 서울에 있는 대학이 가고 싶었다. 대학생 땐 장학금도 받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졸업하자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졌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라는 인생을 관통하는 목표, ‘죽기 전에’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을 자신 있게 소개하자니 머뭇거리게 된다. 죽기 전이 내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꼭 손에 쥐고 갖고 싶은 게 없어서, 놓기 싫은 게 없어서 언제 죽는지에 큰 미련이 없다. 내 앞에 대체 무슨 특별한 가능성이 남아 있나 싶기도 하다.


버킷리스트의 어원은 ‘Kick the bucket’의 그 ‘bucket’이다. 중세 유럽에서 교수형을 집행할 때, 또는 자살 시 발밑에 놓여있는 ‘양동이’를 차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그럼 이 ‘버킷’을 차는 마음을 어떻게 짐작해야 할까.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면서도 생각날 만한 것, 그토록 아른거리고 아쉬운 것이라고 말해도 될까.


평생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양동이를 차는 순간에도 떠올릴 만한 것들이 있다. 나는 그냥 사람이 되고 싶다. 진짜 사람. 나의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없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귀한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변하는 계절마다 떠나보내는 무언가를 인지하는 사람이고 싶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몰라도 계속 찾아 헤매는 사람이고 싶다.

 

눈과 귀를 열고 주변을 감지하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단 걸 굳건히 지키는 사람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사람이고 싶다. 섣부른 판단으로 한 인간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다. 어린 시절과 지금과 중년과 노년을 고루, 성실히 받아들이며 올곧게 사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 내 나이의 타인은 어땠을지 상상하는 사람이고 싶다. 주는 만큼 받지 않아도 속상해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의 탈을 쓴 무엇이고 싶지 않다.


이것들을 이루고 비로소 시원하게 양동이를 걷어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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