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관의 불이 켜졌을 때, 옆 사람에게 어떤 말로 운을 띄워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지난 주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관람한 ‘힌드의 목소리’가 그랬다. 발랄하게 대화를 나누던 상영 전과 달리, 끝나고는 서로 묵묵한 채 별말 없이 각자의 집으로 갔다. 러닝타임 내내 마음 졸였던 우리는, 배경음악도 없이 고요하게 종료되는 이 영화가 주는 참담함과 무기력함을 각자 삼켜내야 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29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적신월사의 콜센터에서 벌어진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적신월사는 적십자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이슬람권 국가의 인도적 구호단체이다.
당시 직원 오마르는 이스라엘군 탱크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겁에 질린 한 여성의 구조요청을 받는다. 그러다 비명과 함께 전화가 끊어지고, 가까스로 다시 연결된 전화 너머로 6살 소녀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황상 아이는 친척들과 함께 차로 대피 중 이스라엘군으로부터 피격당했고, 이미 곁을 떠나간 친척들의 시신 옆에 숨어 누군가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실제 통화 음성과 배우들의 재연 연기를 반복적으로 교차한다. 이는 관객들로하여금 긴장감이 흐르는 사무실에 함께 존재하도록 하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혼합형 방식이다. 녹음본에서 떨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이것이 실제 상황이고, 지금 당장 조치가 필요하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피해 현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불안한 배우들의 표정이 계속 클로즈업되면서, 살아 숨 쉬는 공포로부터 숨을 곳 없이 함께 호흡하게 된다.
특히 인물과 관객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것은, 적십월사 구급대가 사건 현장으로부터 고작 8분 거리에 있음에도 절차적인 승인을 받지 못해 구하러 갈 수 없다는 점이다.
구조대가 이동 중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적십자, 이스라엘 국방부 등과의 조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사이 힌드는 계속해서 구하러 와달라는 간청을, 직원들은 무조건 갈 거라는 달래기를 멈출 수 없다.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 이 생명과 도무지 관련지을 수 없는 복잡하고 먼 것들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5시간의 기다림 끝에, 극적으로 조정에 성공하고 구급대를 보낸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구급차와 힌드가 탄 차량을 향해 무참히 총격을 가하고, 그것은 힌드와 구급대원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된다. 이후 12일간 사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다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망가진 차량과 시신들을 발견한다.
여기서는 실제 현장 영상이 사용됐다.
전화 음성은 소리에 하나의 막이 씌워진 듯 들린다. 수화기 너머 힌드의 목소리, 적신월사 직원들의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어떤 결정권자들의 목소리. 이 얇은 막이 분리하는 공간들 사이에서, 생명의 가치는 다르게 측정된다. 힌드를 우리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 콜센터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를 붙들고 있는 일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을 결정(call)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명이 간절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조정을 시도하는 대상이 ‘집단학살’을 거리끼지 않는 국가라는 점은 또 한 번 무력감을 준다.
적신월사 직원들조차 할 수 있는 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사에게 조정을 독촉하기밖에 없었는데, 한국의 영화관에서 이걸 본 나는 어땠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라면, 힌드같은 무고한 생명들을 구할 힘이 있을까? 결국 이런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의 의미를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의보다는 낙관으로 결론을 내림은, 좀 더 큰 의미에서 힌드 라잡을 기억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쇼츠로, 짧은 뉴스나 기사로써 전쟁의 참상에 진심으로 공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전달될 뿐 미세한 떨림, 눈물, 분노를 전해주기에는 턱없이 짧다. 아직도 영화관이 탁월한 이유는 주의를 돌릴 곳이 차고 넘치는 세상 속에서, 관객을 하나의 정보에만 1시간 이상 강제로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이 정도까지 몰입할 수 있는 것, 이후에 전쟁의 비인간성을 되새기게 하는 것은 영화가 떠먹여 주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가자 지구에서, 이란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10분, 1시간, 2시간, 하루, 한 달 이상 생각한 사람들은 각자 전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태도가 모여 전쟁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생긴다.
따라서 위선일지언정,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작은 ‘표현’에 그칠지언정, 영화는 오늘날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다루기를 선택했다. 따라서 우리도 전화를 끊지 않고, 지속적인 연민과 우려, 비난을 표현해야만, 도덕과 윤리가 유명무실한 고전의 가치만이 아니라 실권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