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단정하고 장식적인 덕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짐작이 빗나갔다. 이 책이 말하는 우아함은 내가 상상한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 내가 느끼던 피로감에 이름을 붙여주는 말에 가까웠다.
저자는 스페인 철학자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다. 그는 지금을 '옴니스크린 시대'라 부른다. 눈을 뜨면 화면이 있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화면인 시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그는 '하이퍼모던 주체'라 부른다. 처음 듣는 단어들이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매일 겪으면서도 이름 붙이지 못했던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시대에 들어 행복과 타자, 시간과 공간 같은 오래된 개념들이 모두 '변이'했다고 말한다. 진화도 발전도 아니고, 변이.
하이퍼모던 주체에게 행복과 미덕의 연결은 사라졌고, 집단이 우선한다는 가치는 점점 악마화되고 있다. 더불어 우리는 타자라는 개념이 점차 도구화되는 과정도 목격하고 있다.
세 가지 단절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잘 사는 것과 행복이 따로 떨어져 나간 것. '우리'라는 말이 점점 어색해지는 것. 타자가 필요할 때만 켜지는 스위치가 되어가는 것.
이어지는 문장도 비슷한 감각을 건드렸다. 하이퍼모던 주체는 끝없이 이동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로. 피드를 끝없이 넘기며 허해지던 저녁 시간들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피곤한데도 화면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지, 그 피로에 구조적인 이름이 붙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무엇인가. 책의 중반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아한 사람은 주어지는 모든 제안을 다 고려하지 않는다. […]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 아무런 구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우아함은 잘 선택하는 능력이었다. 더 정확히는, 잘 버릴 줄 아는 능력. 어원적으로도 우아함은 '잘 선택할 줄 앎'에서 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선택은 충분한 시간과 신중함, 판단력에서 나온다.
읽다 보니 내가 평소 붙잡고 있는 것들이 떠올랐다. 다 보지도 못할 저장 목록, 끝까지 읽지 못한 기사들, 언젠가 써먹겠다며 킵해둔 정보들. 많이 갖는 것이 풍요라고 믿어왔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건 풍요가 아니라 오히려 빈곤이다. 움켜쥐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상태. 내가 풍요라고 생각해온 것이 실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우아함은 결국 이 시대에 대한 거리두기이다.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버리는 흐름에서 한 박자 늦게 걷겠다는 결심.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태도. 그것이 왜 지금 다시 호출되어야 하는지를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쏟아지는 자극 앞에서 나의 기준을 지키는 일.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지적인 용기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