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는 펀치 라인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누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세상에서도 통할까?
최근 유명 의사인 이국종 교수를 사칭해 AI 딥페이크(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넘겨 화제가 되었다. '이국종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영상들은 그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특정 건강 관련 제품이나 정보를 추천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조작되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AI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
연극 <빅 마더>는 쏟아지는 가짜 정보와 알고리즘 시대 속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을 조명하며 관객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에 현직 대통령의 성 스캔들이 보도되며 시작된다. 공개된 사진과 영상이 딥페이크로 조작되었음을 백악관의 공식 성명으로 발표되고, 이에 뉴욕 탐사 소속 기자들은 진실을 파헤치며 거대 권력의 음모와 맞닿게 된다. 이전 저널리즘 관련 작품들이 '권력의 중심과 정의의 군단의 사투'에 집중하고 있다면 '빅 마더'는 '진실과 거짓의 사투 속 혼돈'에 집중하고 있다.
무대는 마치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빠르게 전개된다. 특히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해주는 것은 스크린을 활용한 연출이었는데 배우가 라이브 방송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띄워 큰 화면에 저절로 눈이 가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마치 우리가 함께 그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뉴스가 나올 때마다 배우들의 시선을 따라 함께 관객들도 뉴스에 집중하는 느낌이 들면서 무대 위의 긴박함이 저절로 스며들어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조명을 활용한 포인트들도 인상 깊게 남았는데 과거와 오늘을 오가는 장면에서 빈 벽에 자막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장소를 표현하여 마치 영화의 인서트 컷을 보는 듯하게 표현 하여 자연스럽게 극에 속도감을 주었고, 엄마 역할 배우의 눈에 텔레비전 효과의 조명을 사용하거나 방송 중인 대선 후보가 나오는 장면을 ‘백라이트’를 활용한 조명 효과로 방송, 즉 자극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대해 극적으로 연출해 내고 있다. 극의 내용 자체가 시사를 다루고 있어 자칫하면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빅 마더는 이러한 효과적인 연출들로 100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쾌감을 선사하고 있다.
때문에 배우들의 능력도 한껏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극 전체가 대사량도 많고,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베테랑 배우들이 아니라면 쉽게 해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특히 끝 대사를 바통터치 받아 활용하여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게 하는 트랜지션 효과 같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 간의 밀도 있는 호흡에 감탄 안 할 수 없었다. 특히 뉴욕 탐사의 편집장 역할에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조한철’, ‘유성주’ 배우가 더블 캐스팅되어 각기 다른 결의 캐릭터로 극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 포인트이다. 필자는 ‘유성주’ 배우의 무대를 관람하였는데 차분하면서 대사 사이의 침묵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차가운 카리스마로 캐릭터를 완성하고 있어 ‘조한철’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해석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연출 감독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이 작품은 서울시 극단의 첫 작품이자 새로이 단장으로 취임한 ‘이준우’감독의 취임 후 첫 작품으로 앞으로의 서울시 극단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2025년 <원칙>을 통해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같은 해 <홍련>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이외에도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 <붉은 낙엽>, <왕서개 이야기> 등을 연출하여 서울시 극단에 새로운 젊은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무대가 끝난 뒤 세종문화회관을 나오니 어두워진 광화문에는 커다란 옥외 광고들의 불빛들로 거리가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의 세상이 그저 작가의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란 듯이 화려하게 바뀌는 화면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모바일이나 텔레비전을 볼 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눈을 너무 깜빡이지 않아 시력이 나빠지는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무대 위의 캐릭터들도 극의 초반엔 스크린에 비치는 미디어 화면이나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한다.
하지만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함께 뛰어다니고, 서로를 바라보며 싸우고 토론하며, 손을 잡고 자신의 혼돈을 잠재우기 위해 달려간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낸 진실을 지켜내기 위해 값진 성장을 이룬다. 가만히 앉아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이것이 <빅 마더>가 말하고픈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닐까? 연극 <빅 마더>는 오는 4월 25일(토)까지 ‘세종문화회관 M 씨어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