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본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매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사진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그런데 사진은 조작되기 쉬운 매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히려 우리의 감각을 교란한다. 사진이 주는 이미지는 그것이 대상의 전부라는 착각을, 그것이 대상을 온전히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은 카메라를 쥔 주체의 의도에 따라 쉽게 조작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인 잡지를 예로 들어보자. 잡지 속 모델들은 독자를 위해 끊임없이 연출된다. 사진작가에 의해, 광고주를 위해, 독자를 위해, 각각의 이미지는 겹겹의 의도 아래 조작된다.
박영숙 역시 이러한 사진의 속성을 알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여성교양지 『여상』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일보사가 여성을 대상으로 1936년에 창간한 이 잡지에서, 박영숙은 "시와 사진" 섹션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는 잡지가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었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면 구성을 시도했다. 남성중심적인 시각체계에 대한 저항이었다. 결국 이런 갈등으로 그는 잡지사를 나와야 했다.
여성을 재현하는 사진적 시각체계에 대한 이 불만은, 이후 그가 행하는 모든 페미니스트 사진 작업과 예술 실천 전반의 뿌리가 되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는 박영숙 별세 후 첫 개인전인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를 선보였다.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미친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큰 사진들에 놀랐다. 한복을 풀어헤치고 가슴을 내놓은 여성, 자신의 중요 부위를 은밀하게 드러내는 여성이 사진 안에서 나를 응시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상실된 성〉이다. 왜 상실된 성일까. 성은 어떻게 상실되는가.

다른 한편에서는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이 있었다. 칼을 들고 허공을 응시하거나, 칼에 베여 피가 나는 손을 부여잡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여성이 병치되어 있었다. 부엌과 같은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고등어와 파를 손질하는 여인들의 이미지에서는, 꾹꾹 눌러담긴 억압의 감정이 느껴졌다.


다른 전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 혼자 큰 화면을 차지하며 전면에 내세워져 있었다.
이리저리 사진을 둘러보았는데, 사진을 보호하기 위한 플라스틱 혹은 유리의 액자 표면 위로 각 작품이 몽타주 된 순간이 있었다. 표면 위로 미친년들끼리, 그리고 그들과 내가 서로 포개지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박영숙이 소환한, 그리고 초대한 불온한 것들이 함께 모인 순간이었다.

전시장 한켠에는 작업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 있었는데, 박영숙의 작업은 대단히 연출되고 조작된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옷매무새나 포즈에 대한 지시와 조언이 오가는 과정 속에서 억압된 무언가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광기'는 박영숙에게 단순한 주제가 아니었다. 정상성의 언어를 해체하는 전략이자, 억눌린 욕망을 드러내는 미학적 장치였다.
그녀는 사진이 할 수 있는 연출과 조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요구했던 이미지를 전복시켰다. 연출된 광기의 순간은 여성 주체의 발화이자, 여성을 조작했던 구조에 균열을 내는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