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다양한 글들을 통해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예술의 매력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안트로폴리스>와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를 다룬 글들을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에, 언젠가 국립극단의 작품을 꼭 도전해보리라 다짐했다.

 

그 후 연극 <삼매경>의 예고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틀자마자 느껴지는 몽환적이고도 어지러운 분위기에 반해, 결국 명동예술극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60316_200439935.jpg

 

 

극장에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배우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무대 곳곳에 흩어져 몸으로 나무와 비둘기, 토끼, 바람 등의 자연을 매우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자연물들 뒤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동승도 보인다. 그 전체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불화(佛畫) 같았다.


다만 전형적인 불화처럼 마냥 평온하고 온화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들을 감싸는 전체 무대는 낡은 극장을 무대 위에 다시 세운 회색빛 바탕의 구조로, 가장자리의 벽과 바닥은 벗겨지고, 낡은 자국 위로 먼지가 쌓여 시간의 흔적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불화는 역동적이면서도 어딘가 서늘하다. 그 모습에 압도당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나는 무대에 펼쳐진 이계를, 사실은 주인공 '춘성'의 내면 세계인 그곳을 정신없이 관찰했다.

 

 

삼매경사진2.jpg

 

 

이 작품은 34년 전 <동승>이라는 극에서 맡았던 '도념'이라는 역할을 '실패'로 여기며 평생을 그 후회 속에 갇혀 사는 중년 배우 '춘성'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날, 도념의 젊은 시절 자아가 나타나 그를 죽이고 저승으로 보낸다. 그러나 도념은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저승길을 벗어난다. 마침내 도념은 34년 전 연습실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되고, 현실과 과거, 연극과 인생이 뒤섞인 삼매경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사실 이 작품에서 길을 잃은 건 춘성뿐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이 작품을 보다가 종종 길을 잃어버렸다. 이 작품은 솔직히 예상대로 어려웠다. 복잡하게 오가는 장면들의 시점이 꽤나 헷갈렸다. 그리고 평소 접하던 작품들과 너무나도 다른 결의 분위기와 파격적인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나긋하면서도 절절한 대사 톤에서 그 속의 의미보다 낯섦이 먼저 다가왔다.

 

그렇지만 분명한 여운과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삼매경사진3.jpg

 

 

극 중에서는 '발뒤꿈치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많이 언급된다. '춘성'에게 그것은 '도념', 즉 '실패한 과거의 나'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발을 뒤에서 꽉 물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절뚝거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34년 전 연습실에서 '춘성'에게 '연출'은 연기란 '무의 상태'가 되어 나 자신을 비우고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왜 몰입을 못하는지 알아? 자아 때문이야"라고 일갈한다. 즉 발뒤꿈치를 물고 있는 것은 결국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같은 지독한 자아의 흔적이다. 이것을 놓아주어야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자유로이 해탈과 몰입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너무나 어려워 내 발목을 물고 늘어지게 놔두는 것이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춘성은 결국 깨닫는다. 나를 괴롭히고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은 '도념'이라는 배역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연극을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다는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서는 이렇게 외치며 족쇄를 스스로 풀어 던진다.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


결국 이 작품은 완벽하지 못했던 모든 인생들을 예찬하는 극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대사대로 연극은 신이고, 배우는 사제다. 즉 연극은 우리의 삶이고 배우는,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연극에 충실히 참여함으로써 그 인생을 봉헌하는 이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발꿈치를 문 과거는 털어버리고 인생이라는 무대를 섬겨야겠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삼매에 이르기까지.

 

 

 

컬처리스트 명함 임솔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