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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뮤지컬 <비틀쥬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거 진짜 죽여주는 공연이다!"
진짜다. <비틀쥬스> 뮤지컬에선 진짜 사람을 죽이고, 죽여줄만큼 웃기다.
팀 버튼 감독의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동명 영화가 무대 위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올해 2월,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꾸만 나에게 '비틀쥰수(김준수 비틀쥬스)'의 넘버 영상을 띄워주기 시작했다. 화면 속 그가 내뿜는 잔망스럽고 깜찍한 에너지는 브로드웨이 원작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이었고, 한 번 들으면 귓가를 떠나지 않는 넘버에 이끌려 홀린 듯이 공연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비틀쥬스>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고정관념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낸 블랙코미디 뮤지컬이다.
본격적인 공연의 첫 장면은 리디아 엄마의 장례식장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10대 소녀 리디아는 슬픔에 잠겨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간다는 노래를 구슬피 부른다. "슬플 때는 투명해져. ... 엄마는 없어도 햇살은 비치고 다들 멀쩡한데, 나만 자꾸 투명해져". 이 슬픈 노래가 끝나자마자 비틀쥬스가 불쑥 등장한다.

"야! 누가 장례식장에서 이딴 발라드를 부르냐!"
무례와 유머의 경계를 넘나드는 악동스러운 한마디는 단숨에 장례식장의 숙연한 분위기를 코미디로 바꿔버린다. 비틀쥬스는 랩을 하듯이 죽음에 대해 유쾌하고 리듬감있는 노래를 이어나간다.
"지저스 부처 각종 예언자'신은 죽었다' 던 니체 걔도 죽었다. ... 누구나 다 똑같아근육맨, 멸치맨, 결국엔 다 저승맨! 공평하고 좋다 야. 아 건강해도 죽고, 행복해도 죽고,너무 좋아 죽고, 너희도 다 죽어~"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팩트 가득하고 악랄한 가사에 입을 막게 된다.
이 날 것의 대사 위에서 날뛰는 배우의 찰떡같은 연기, 그리고 생생한 말맛은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프로그램북의 각색 명단에 이름을 올린 희극인 이창호의 역할이 컸다. 미국의 비속어를 한국의 찰진 욕으로 바꾸고, 현재 가장 트렌디한 밈들을 영리하게 녹여낸 덕분에 캐릭터가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한국적 비틀쥬스는 거칠면서도 가장 한국스러운 유머 담고 있는 듯 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내가 관람한 페어인 김준수, 홍나현 배우의 활약이다. 특히 김준수의 비틀쥬스는 기존 뮤지컬 대본의 3~4배가 된다는 엄청난 대사량을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내뱉으며, 박자감 위에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다 쏟아낸다. 본인이 직접 "몸을 쓰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듯, 기괴하고 잽싸게 꺾이는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느낌이 고스란히 뿜어져 나온다.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해맑게 "자~ 저승길 따라 걸어가보자"며 노래를 부르다가, 순식간에 돌변해서 성난 록스타처럼 거칠게 노래를 부르고 우쿨렐레를 박살 내버리는 김준수 배우의 '금쪽이' 같은 반전 매력은 엄청난 웃음을 안긴다. 비틀쥬스는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텐션 높은 악역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김준수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궂은 장난을 특유의 끼와 에너지로 뻔뻔하게 소화해 낸다.
저 세상 악마가 귀여워 보일 정도였으니, 마냥 미워할 수 없고 안쓰럽게 짠해서 멀리서 응원하게 되는 금쪽이 같은 존재였다. 코미디 극이 첫 출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비틀쥰수'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홍나현 배우 역시 작지만 강한 록커처럼 폭발적인 성량으로 단단한 진면목을 보여주며 환상적인 균형을 맞췄다.

투명인간들의 기묘한 만남
가장 외로운 두 존재의 만남은 극을 관통하는 중요한 서사다. 비틀쥬스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낑겨 100억 년을 살고 있는 영혼이다. 저승에 갈 수도 없고, 이승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없는 가장 외로운 존재다. 그런 비틀쥬스와 리디아가 처음 이어지는 순간이 있다.
자신은 영원한 투명인간이라며 좌절하던 그에게 영혼을 볼 수 있는 소녀 리디아가 나타난다. 세상으로부터 투명해진 두 존재는 서로의 결핍을 단숨에 알아본다.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리디아의 말에 비틀쥬스는 공감하며 친구가 되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 참했는데, 좀 재밌네". 리디아가 'Say my name' 넘버에서 비틀쥬스를 쥐락펴락하고, 그에게 잘 보이려 안절부절못하는 비틀쥬스의 모습은 기묘한 관계 역전이 주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여기서 배우들의 활약이 극을 꽉 채운다. 홍나현 배우의 리디아는 작은 몸에서 폭발적인 성량을 쏟아낸다. 작지만 강한, 발적인 성량으로 단단한 진면목을 보여준다. 비틀쥬스는 악동 같은 캐릭터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고, 안쓰럽게 짠해서 멀리서 응원하게 되는 금쪽이 같은 존재다. 김준수가 표현한 '비틀쥰수'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더욱 깜짝 놀란 것은 김준수가 이런 대놓고 코미디 극에 출연한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너무 일상적이듯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소화해 내는 그의 무대 장악력에 놀랐고, 그가 지닌 유머러스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시각화된 사후세계
작품의 기괴하고 요상한 세계는 시각화된 무대 연출을 통해 완벽하게 살아난다.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브로드웨이의 오리지널 세트와 인형들이 그대로 들어와 초현실적인 무대를 완성했다. 극 중에 등장하는 거대한 비틀쥬스 탈과 왕뱀이 인형들은 요상하지만 정감이 가며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특히 원작 영화 감독 팀 버튼 특유의 감각을 살려, 손수 만든 듯한 삐뚤빼뚤한 느낌과 수공예적인 분위기를 무대 위에 재현했다고 한다.
특히 아담과 바바라 부부의 집이 네 번이나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은 압권이다. 처음 아담과 바바라의 집은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지만, 리디아 아빠가 집을 샀을 때는 삭막하고 현대적인 집으로 바뀐다. 이후 비틀쥬스가 세상으로 나와 집을 장악한 순간에는 줄무늬 모양과 기괴한 벌레들이 들끓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신하고, 게임쇼를 진행할 때는 그 위에 또 다른 에너지를 덧붙여 완전한 저세상 분위기를 뿜어낸다. 하나의 공연에서 같은 집을 네 가지 분위기로 구성하는 놀라운 시각적 장치 덕분에 관객은 이 초현실적인 무대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죽음을 통해 발견한 삶의 가치

서로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하며 뒤통수도 치던 비틀쥬스와 리디아지만, 결국 리디아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비틀쥬스는 왕뱀이를 타고 나타나 기꺼이 그녀를 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저승에 가게 된 리디아는 그곳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길어."미스 아르헨티나의 이 한마디는 삶의 가치를 확 와닿게 한다. "삶은 번거로운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번거로움이야", "삶, 낯설고 이상하고 다차원적인 엉망진창, 뻔하지 않을 테니까 좋아" 같은 대사들은 죽음의 공간에서 삶의 이유를 증명하며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저승에 가서야 리디아는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된다. 아빠 역시 엄마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의 진심을 들은 리디아는 마음의 문을 열고 관계를 회복하며, 자신을 지키려 했던 새엄마까지 온전한 가족 안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는 비틀쥬스의 마지막 인사도 빼놓을 수 없다. 리디아가 저승으로 끌려갈 위기일 때, 왕뱀이를 타고와 리디아를 구해준다.
유명 애니메이션 만화의 짤방 대사인 "여러분 전 이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요 요!"를 능청스럽게 외치며 퇴장한다. 이 대사 아이디어를 김준수 배우가 직접 냈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극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는지 증명한다.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열려있는 뮤지컬이었기에, 마지막 가는 길까지 정말 비틀쥬스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남기며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죽음을 저토록 유쾌하게 맞이할 수도 있다는 신선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비틀쥬스의 태도는 죽음이 마냥 두렵고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묘한 위로를 건넨다.
<비틀쥬스>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다크 뮤지컬이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소중함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미친 듯이 웃고 싶을 때, 뻔한 생각의 틀을 깨고 싶을 때, 무대 위 인간의 상상력이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 그리고 배우들의 선 넘는 잔망미 넘치는 끼를 원 없이 보고 싶을 때 주저 없이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