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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달력 위의 하루가 아닌, 이어지는 시간에 대하여 [도서/문학]

『제철 행복』을 읽고

by 임혜인 에디터
2026.02.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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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월 4일. 입춘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입춘과 같은 절기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입춘이라고? 아직 밖이 추운데?"라는 말 한마디로 넘겨버렸다. 절기가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고는 하지만 체감되지 않는 변화 앞에서 그저 늘 달력 속 글자로만 머물렀다. 이번 입춘 역시 어김없이 한파주의보가 함께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계절이 짧다고 느껴왔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돌아본 일이 잘 없었다. 그러다 『제철 행복』을 읽으며 계절이 짧게 느껴졌던 이유가 시간이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계절을 너무 성급하게 지나쳐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철 행복』의 저자 김신지 작가는 한 해를 사계절이 아닌 이십사절기로 나눈다. 그동안 잘 알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절기의 의미, 그리고 그 시기여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감각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풀어낸다. 옛사람들이 절기를 보내며 쌓아온 지혜와 풍습에 작가의 일상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그동안 절기를 어떻게 보내왔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앞으로 절기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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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절기 중에서도 특히 경칩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저자는 봄 청소를 '집의 기지개'라고 표현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처럼 집도 몸도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라는 말이 귀엽고도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청소나 정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늘 미뤄두고 어렵게 느껴왔던 일이다. 하지만 봄 청소를 겨울 동안 웅크렸던 나 자신을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조금은 중요하게 느껴졌다.

 

 

청소는 결국 빈자리를 만드는 일.

 

매년 이맘때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듯 바닥을 쓸고 닦고, 화분을 옮기고,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눈다.

 

봄에게 앉을 자리를 내어주어야지.

 

(p.55)

 

 

봄은 시작의 계절이다.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는 정리가 필요하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과 기억의 자리를 비워두는 일. 그렇게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봄 제철 행복은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와 시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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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계절마다 다른 태도를 제안한다. 여름에 이르러 저자는 우리에게 쉬어갈 명분을 건넨다. 여름이 이토록 더운 이유는 무리하지 말라고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함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쉼은 죄책감이 아니라 평온함이어야 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귀담아듣는 데서부터 시작하니까.

 

···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알아줄 때. 그 목록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p.145-146)


 

여름의 절기 중 망종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장마가 오기 전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 애쓴다고 말한다. 또한 그 모든 걸 다 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원하는 것의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루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 자책해 왔던 나에게 그 말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의 여름 제철 행복은 뻥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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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안에 없는 것은 미래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는 이미 다,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이 가을은 닫힌 셔터 안쪽에서 봄을 준비하는 시작의 계절일 수 있는 것이다.

 

(p.256)


 

가을을 떠올리면 나는 늘 수확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동안 해온 일의 결과를 확인하고 한 해를 정리하는 계절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제철 행복』은 가을을 또 다른 시작의 계절로 바라보게 한다. 자연은 이미 가을부터 다음 봄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처럼 시작은 반드시 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앞서 걱정하기보다 지금을 살아가며 내 안에 미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그래서 나의 가을 제철 행복은 처서 무렵의 밤 산책이다. 서늘해진 공기 속에서 하루를 돌아보며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을 걸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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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이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p.334)

 

 

나에게 겨울은 잔잔하고 멈춘 듯한 계절이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지만 동시에 다시 새해를 향해 나아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겨울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그려진다.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라는 문장처럼 계절은 끝나지 않고 돌고 돈다. 한 해가 지나도 절기는 이어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매번 새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나의 겨울 제철 행복은 멈춰있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제철 행복』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입춘은 이미 지나가 버린 날이 아니라 아직 이어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직 입춘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올해의 입춘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계절이 짧다고 말하기보다 절기의 속도에 잠시 발맞추어 서서 나만의 절기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계절을 살아내다 보면 삶이 행복을 향해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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