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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읊은 시들도 흩어져 잃어버릴까 [공연]

고전 문학으로 무용 읽기

by 이다혜 에디터
2026.01.25 11:14

 

 

湖東西洛記

호동서락기

  

나는 관동(關東)의 봉래산(蓬萊山) 사람이다. 스스로 금원(錦園)이라 호를 하였는데, 어려서 잔병이 많아 부모가 불쌍하게 여겨 여자가 해야 할 가사나 바느질은 가르치지 않고 글 공부를 시켰다. 글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경사(經史)에 대략 통하게 되고 고금의 문장을 본받아 배워 흥이 나면 때때로 시문(詩文)을 짓기에 이르렀다.

 

가만히 내 인생(人生)을 생각해 보았다.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실로 다행이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야만인이 사는 곳에 태어나지 않고 우리나라와 같은 문명국에 태어난 것은 더욱 다행이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불행이요,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하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것도 불행이다. 그러나 하늘은 나에게 산수(山水)를 즐기는 어진 성품과 눈과 귀로 듣고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어 다만 산수를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고절하게 보고 듣게 해 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하늘이 나에게 총명한 재주를 주어 문명(文明)한 나라에서 이를 글로 쓸 수 있게 하였으니 이 또한 좋지 않은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閨房) 깊숙이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을 단념하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세상에는 천윤(詹尹)의 거북이 없으니 굴자(屈子) 가 점친 것을 본받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 말에 이르기를,

“책략은 짧으나 지략이 넉넉하거든 그 뜻대로 결행하라.”

라고 하였으니 내 뜻은 이에 결정되었다.

 

 

 

 

금원 김씨는 자신을 관동 봉래산 사람이라 소개한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부모는 그녀에게 바느질 대신 글을 가르쳤다. 경사에 통하고 시문을 짓게 되었지만, 금원은 자신의 재능을 쉽게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삶을 두 분류로 나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 문명국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한 다행이었지만, 여자로 태어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불행이었다고 말한다.


금원 김 씨는 본래 강원도 원주 출신의 기녀이며 금앵이라고도 불렸다. 금원 김 씨는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는 1830년 3월, 14세 때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남자 옷을 입는 등 남장을 한 뒤 금강산을 유람했다. 제목 '호동서락기'는 충청도 호서지방의 호(湖),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동(東), 평양과 의주를 포함한 관서지방의 서(西), 한양의 락(洛)으로, 저자 김금원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사족의 부녀로서 산간이나 물가에서 잔치를 즐기는 자, 야제(野祭)나 산천 성황 사묘제(山川城隍祠廟祭)를 행하는 자는 장(杖) 100대에 처한다' - 經國大典
 

 

14세의 나이에 떠난 이 여행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경국대전』은 여성의 외부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고, 열다섯이 되면 혼례를 치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금원은 그 경계에 서 있던 나이에 길을 나섰다. 원주에서 출발해 관동과 관서를 거쳐 호서, 한양까지 이어진 길은 거리로만 따져도 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당시 여성 혼자의 여행으로는 무모한 것이 사실이다.

 

조선에서 15살이 되면 남자는 관례에 따라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고, 여자는 혼례를 치르며 계례에 따라 쪽을 지고 비녀를 꽂아야 했다. 여성은 15살이 넘으면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어머니가 되어 외부와 더욱 단절된 생활을, 더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15살이 되기 전 마지막 자유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직접 설득하고 스스로 여행 계획을 세운 뒤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

 

눈으로 산하의 큼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사물의 중다함을 겪지 못한다면 통변하여 그 이치에 도달할 수 없어 국량이 협소해지고 식견이 통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며 남자가 사방에 노니는 뜻을 귀중히 여기는 이유이다. 여자 같으면 발이 규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술과 음식을 만드는 일만을 의논하는 것이 옳다 했으나 옛날 문왕, 무왕과 공자 맹자의 어머니에게는 모두 성덕이 있고 또 성자를 낳아 이름이 만세에 드러났다. 이와같이 혁혁하게 일컬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거나 약간 있는 것이지만 어찌 여자 가운데 무리 중 뛰어난 자가 홀로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규중에 깊숙이 살아 그 총명과 식견을 넓힐 수가 없어 끝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금원 김 씨는 여행 20년 후인 1850년에 발문을 썼다. 유람 이후 그녀의 일대기에 감동한 김정희의 소실이 된 금원 김 씨는 그전까지 '금앵'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생 활동을 했기에 그녀의 단신 유람기가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동행인의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생이 될 예정인 금원 김 씨가 양반의 유람에 동행하며 느낀 감상을 각색하여 20년 후에 재구성하였다고 보는 학자들도 더러 있다. 호동서락기는 시작부터 여타 유람 기록, 여성 집필 작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므로 유람 20년 후 금원 김 씨의 작품 활동은 유람 자체의 기록보다는 문인으로의 도약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조선 후기 당시 문학 작품의 서술 주체가 양반은 물론 서민과 아녀자에게까지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동서락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위험하고 파격적인 여행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기행문이 출발 전의 설렘이나 여정 중의 감흥을 앞세우는 데 비해, 금원은 여행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먼저 설명한다. 세상을 직접 보고 겪지 않으면 식견이 좁아지고 이치에 닿을 수 없다는 주장, 산과 물을 사랑하는 것이 인자와 지자의 태도라는 논리를 끌어온다. 여자가 규문을 나서지 못한 채 총명함을 소진해 버리는 현실이야말로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호동서락기」에서 여행은 목적이 아니다. 여행은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한 근거에 가깝다. 금원이 처한 현실에서 여성에게 허용된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유람과 기록은 그 안에서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적극적 행위였다. 이름을 남길 수 없고, 삶의 경로가 미리 정해져 있던 시대에 금원은 이동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글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호동서락기』는 슬픔의 기록이라기보다, 당시 여성으로서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자기 보존이자 자기 증명의 결과에 가깝다.

 

유람의 용기를 인정받았지만 곧 잊힐 조선 여성의 한계를 누구보다 익히 알고 있었던 금원 김 씨는 비록 유람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더라도 문인으로서 세상에 남기를 바라 과거 유람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과 태도는 기록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규범의 경계에서 규방을 박차고, 이동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려 했던 금원의 여정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쓰인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2차 창작의 모티프가 되는 것은 큰 기쁨일 것이다. 글로 남긴 유람의 기억이 이제 하나의 안무로 옮겨지고, 동작으로 풀려나간다. 이 무대는 금원 김 씨의 작품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 당시 한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결심을 무대 위에서 다시 펼친다. 기억되고자 했던 금원 김 씨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

 

지나간 일도 스쳐 지나가면 눈 깜짝할 사이의 꿈에 불과하다.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금원을 알겠는가. ... 읊은 시들도 흩어져 잃어버릴까, 역시 간략하게 기록한다. ...

 

아직 혼기에 미치지 아니 한 나이에 강산(江山)의 승경(勝景)을 두루 보고 증점(曾點)을 본받아 세속의 일 다 잊고 맑은 물에 멱 감고 무우(舞雩)에 올라가 글을 읊조리다 돌아오면 성인도 온당하다 할 것이다.

 

마음은 이미 집을 떠나 이름 있는 명승지를 찾아 맑게 유람할 것을 정하였다. 어버이에게 이 계획을 사뢴 지 오래 되어 겨우 허락을 얻었다. 어렵게 받은 허락이라 마음이 후련하기가 마치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나와 끝없는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이고, 좋은 말이 굴레와 안장을 벗은 채 천리를 달리는 기분이다. ...

 

돌이켜 평생의 맑은 놀이를 생각하면 산수의 사이에 발자취를 부쳐 기괴한 경치를 찾아 아름다운 지역들을 두루 다니며 남자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능히 할 수 있었으니 분수가 족하고 소원도 이룬 것이다. 슬프다. 천지 강산의 큼이여. 한 모퉁이 좁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크게 볼 만한 것이 충분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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