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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판’ 시츠프로브 중 ‘쾌하였도다’
좋은 공연을 볼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스무 살, 연극 연출 입시를 준비 하면서 잠깐 스쳤던 인연이다. 연출 입시의 특성상,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토론을 자주 했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 깊었던 학생 A가 있었다.
어느 토론 시간, A는 왜 연극은 늘 어렵고 심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 아집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시간이 닿는 대로 공연을 보러 다니던 나는 그 말이 인상 깊었고, 깊이 공감했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연락은 자연스레 끊어졌지만, 인상적인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A도 이 공연을 봤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더불어 묻고 싶은 질문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 질문 중 하나는 왜 공연이 특정 관객층의 전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결에 따른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접근 자체가 어려워져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연장을 둘러보면 관객층은 대부분 한쪽 층위에 머물러 있곤 했다.
그런 의구심을 품고 있던 와중, 뮤지컬 ‘판’은 나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내가 봤던 그 어떤 공연들보다도 성별과 연령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객석이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판
전기수와 매설방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억압의 시대 안에서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를 즐겁고도 단순하게 풀어낸다. 특히 ‘판’의 가장 큰 매력은 전기수라는 소재에 걸맞은 관객 참여 형태의 진행이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명목 아래 관객들은 마치 당시의 매설방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밝고 단순한 분위기와 당시 시대상을 넘나드는 흐름을 통해 관객들은 억압 속에서 희망을 좇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덕일까, ‘판’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배우들과 기꺼이 소통하고 교감하며 이야기에 빠져 들어갈 수 있다는 감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모여, 다양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한다.
어떤 장르든 첫 경험은 중요하다. 취향에 맞지 않다고 느낀 장르를 기꺼이 한 번 더 경험해 볼 너그러운 사람은 많지 않다. 제 아무리 유명한 공연이더라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판’은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등용문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판’은 웃음과 참여로 관객을 끌어들이지만, 그 바탕에 분명한 주제 의식을 가졌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흥겨운 장단 위에 놓인 감정들은 언어를 타고 관객에게 가 닿으며 끝내 카타르시스로 남는다.
물론 관객 참여라는 형식적인 특성상, 서사의 밀도가 느슨해지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기존의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전개가 끊긴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습 마저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연’ 이라는 방향성 내에서는 설득력을 가진다. 모든 관객을 아우르고 즐거움을 주겠다는 그 포부가 당시 억압된 상황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도 맞물려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A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다시 혜화에 도착해 느낀 감정을 되짚었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본지가 꽤 되어, 익숙하고도 낯선 분위기였다. 그런 감정으로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활기찬 공기와 공연장의 익숙한 냄새도 유독 뭉클했다. 내가 공연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거였지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A는 여전히 공연을 하고 있을까. 이 업계 어딘가에 발을 붙이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언젠가 창작진 명단에서 그 이름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후에도 또 한 차례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보러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많은 질문들을 쌓아둔 채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