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버릇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자꾸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되고, 생각의 결론은 ‘옛날이 좋았지’로 귀결된다고 이야기하던. 과거의 나는 멋졌고, 그 모든 일은 돌아보면 참 힘든 일이었는데 묵묵히 잘 이겨낸 점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보잘것없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지금의 나는 다시 과거의 내가 되어 멋진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미래도 잘 알고 있었다.

 

 

티저 포스터.jpg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표작 <하나 그리고 둘(Yi yi)>이 개봉 25주년을 맞아 다시 극장을 찾는다. 영화는 삶의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타이베이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NJ와 민민, 팅팅, 양양 네 사람은 가족의 삶 너머에서 개인의 박자를 되짚어간다. 할머니의 죽음이 보이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 자신의 삶을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네 사람의 모습이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3.jpeg

 

 

할머니가 쓰러지신 이후로 죄책감을 느끼는 팅팅은 첫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이고, 위태로운 첫사랑의 맛은 아찔하다. 할머니의 죽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처지가 된 엄마 민민는 권태로운 삶과 슬픔에 위기를 느끼고 가족을 두고 절로 떠난다. 8살 어린아이인 양양은 아버지인 NJ의 카메라로 눈에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찍기 시작한다. NJ는 가족과 회사의 위기와 갈등 속에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삶은 무척이나 복잡하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사실은 늘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인생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하나가 일어나면 또다시 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삶은 우리의 상황을 봐주면서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다섯 명이 모인 집, 멈춰버린 할머니의 시간을 제외한 네 명의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때로는 닥쳐오는 일에 대응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르며, 무엇이든 새로운 일 투성이다.

 


4.jpeg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은 NJ에게 그 이유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진실의 절반만 볼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우린 앞만 보고 있으니 뒤를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 진실의 절반만 보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 삶은 때론 설명이 불충분하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될 수 없으므로, 나는 타인이 될 수 없으므로 이해의 공백이 시작된다. 내가 보는 면이 진실의 절반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어린 양양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말한다. “할머니, 전 모르는 게 많아요. 그러니 제가 커서 뭘 하고 싶은 줄 아시나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거예요. 그들이 모르는 것들을요. 그들에게 보여줄 거예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요.” 뒷모습 같은 것들을 말이다.


NJ는 출장 장소였던 도쿄에서 첫사랑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온다. 사업차 비즈니스를 위해 도쿄에서 오타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오타와의 사업은 성사되지 못하고 직접 거절의 말을 전해야 할 처지에 놓일 뿐이다. 첫사랑인 셰리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건 좋았지만, 타이베이로 돌아온 일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부고만이 새롭게 찾아온 사건이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우연히 NJ의 뒷모습을 보게 되어 하나 그다음의 둘을 알게 되었다. 양양이 아버지인 그의 뒷모습을 찍었기에 그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반쪽만 볼 수 있다. 절에서 어떤 일상을 보냈을지 모르는 민민과, 팅팅의 첫사랑인 패티, 할머니의 뒷모습도. 우리는 그들의 반쪽짜리 모습만 볼 수 있다. 영화는 등장인물 사이를 오가며 하나와 그 다음의 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하나로(Yi yi) 돌아갈 일이 남았다.



5.jpeg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173분간 흐르는 서울의 상영관에서, 시사회를 찾은 수많은 사람이 퍼즐 조각처럼 단단히 이어진 채로 그들의 삶을 훔쳐봤다. 상영관의 맨 뒷자리인 L열에서 영화를 본 에디터는 운이 좋게도 영화관을 찾은 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건 그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과 삶들의 뒷모습일 것이다. 영화관을 나선 이들에겐 하나하나의 삶이 존재할 뿐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지만,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NJ의 말을 빌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부딪혀보면 다를 줄 알았던 것도, 결과는 같고 다를 게 없었다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그 대사는 과거의 후회를 보듬는 것 같지만, 동시에 현재의 비극도 품어주는 말이니까.

 

 

 

정현승 tag_아트인사이트.jpg

 

 

정현승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고개를 넘고 넘어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