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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헤비가 처음으로 업로드했던 커버곡 Henceforth를 독서실에 앉아 계속해서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Henceforth나 Daybreak Frontline이 그렇듯, Orangestar가 작곡한 노래들은 대개 초고음역대에 빠른 비트가 휘몰아친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보컬로이드로 만들어졌기 때문. 해서 청량하고 깔끔하게 고음을 올리는 여성 보컬을 좋아하는 나의 음악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Henceforth 커버는 많지 않았다. 애초에 쉽게 부르라고 만든 노래가 아니니까.

 

그렇기에 누구보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하이 노트를 부르는 헤비의 창법은 특별했다. 부단히도 찍힌 음표에 굴하지 않고 가장 맑게, 최전선을 달려 나가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올해, 헤비가 버츄얼 아바타와 함께 아티스트로 공식 데뷔했다.

 

 


 

남아있던 나를 떠나 더 희미해지고

어떤 외로움을 품고 살아가더라도

내게 닿았던 기억은 늘 찬란하게 번져

아직도 난 왜 잊지도 못하고 또

왜 난 더 더 왜 갇힌 것 같은데

겁에 질린 채로

처음이라서 그래 가 본 적 없는 길에

날 잠시 잊은 채 가시를 세운 채

상처난 꽃잎처럼

떨어질 때 내 손을 잡아줄래

끝의 밤을 지울게

빛으로

 

그냥 달아나자 저 너머에 어두워지는 하늘이

우릴 다시 찾을 수 없게

검은 밤이 무섭지 않다기보단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냐

아침일 거야 우린 늘

 

 

헤비의 첫 미니 앨범 『Chroma』(25.04.22 발매)의 선공개곡이자 타이틀곡 『늘(EVER)』.

 

가장 먼저 헤비의 데뷔를 알린 곡이고, 그로 인해 잔뜩 집중되었던 이목과 팬들의 기대를 한 번에 뛰어넘은 곡이다.

 

『늘(EVER)』은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늘 진심으로 사랑해왔던 것에 도전해도 될까, 그걸 계속해도 될까 하고 의문이 드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옮겨도, 형태만 바꾼 채 남아 있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그 애정은 결국 용기가 되고, 이로써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극복된다. 이 곡은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를 안고서도 앞으로 가는 선택을 말한다.

 

헤비가 직접 작사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데뷔곡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고백처럼 들린다. 무섭지 않다기보단, 그저 포기할 수 없을 뿐이다. 헤비는 음악을, 우리는 각자의 무언가를.

 

그동안 파워풀하고 기교가 많은 곡을 잘 소화한다며 보컬적 능력 위주로 인식되던 헤비가, 『늘(EVER)』을 통해서는 자신의 이야기와 내면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는,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다가온다. 아마 이것이 그동안 헤비의 진짜 지향점에 가깝지 않았을까. 헤비의 날은 이렇게 밝았다.

 

*

 

얼마 전 미니 2집 『Human Eclipse』가 발매됐다. 타이틀곡은 『Be I』.

 

 

깊은 어둠이 지나고, 오랫동안 낯설게 느껴졌던 ‘그녀(She)’와의 긴 대화 끝에 Hebi는 서서히 내면의 빛을 되찾습니다. 숲길을 지나 자신을 비추는 마지막 빛 앞에 섰을 때, 마침내 깨닫습니다. “나는 빛을 쫓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바로 빛이다.”

 

어릴 적 꿈꾸던 나, 흔들리던 나, 규정되어 왔던 모든 나를 지나 지금 이 순간 나로 존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스스로의 이름을 되찾고 더 이상 헤매지 않는 ‘나’로 다시 태어나는 출발점에 섭니다. Be I —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향한 선언입니다.

 

- 『Be I』 곡 소개

 

 

이제 헤비는 다른 누구의 이름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한다. 이를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헤비는 앨범 발매 후 더 적극적으로 바깥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노래할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국내 최대 규모 J-POP & Artist 페스티벌인 원더리벳 2025 무대에 선 것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헤비는 앞으로도 늘, 헤비로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전의 시간과 경험들은 모두 헤비의 노래가 되었고, 그 덕에 헤비는 어느 누구의 앞에서라도 단단히 자신의 내면을 꺼내들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버츄얼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라고 시작하는 헤드라인을 얻을 것만 같다.

 

 헤비가 활강이 아닌, 내일을 향해 무한히 비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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