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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엮인 자기소개


 

“자기소개서”가 아닌 자기소개 자체는 오랜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나를 소개하기 앞서 “자기소개는 무엇인가?”를 먼저 얘기해보고 싶다. 자기소개라는 행위는 보통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필요가 있을 때 시작된다.

 

이 필요는 누군가를 처음 알아볼 때 발생한다. 첫 마디는 “제 이름은 강민경입니다.”라는 문장일 거고, 타인에게 나를 부를 수 있는 도구를 하나 건네는 격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나이도 알려드리죠. 아무래도 나도 그렇고, 나이주의에서 벗어나긴 어려워서 말입니다.

 

 “아, 저는 02년생, 24살이에요.” 2023년 이후로 만 나이를 썼네 안 썼네 하는 데에서 ‘이 녀석 제법 나이에 신경 쓰는 타입인 건가?’ 아니면 ‘규칙을 잘 지키는 타입인 건가?’ 등 저마다의 추측과 해석이 덧붙게 될 것이다. 그 다음 궁금한 것은 무엇이죠?

 

24살이라는 정보에서 발생하는 궁금증들? 학교에 다니시나요? 다니신다면 졸업하셨나요? 지금은 얼굴 없이 전달하는 자기소개이지만, 만일 나를 실제로 봤다면 머리는 탈색하신 건가요? 염색은 언제 하시죠? 같은 걸 물어볼지도.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알고 싶은 것을 공격적으로 물어볼지 체면을 차릴지. 나를 어디까지 선보일지, 남을 어디까지 궁금해할지. 결국은 타인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구나.

 

 

 

기울어진 자기소개


 

한편, 그것이 관심사나 취미를 공유하는 자리였다면, “록 장르를 좋아해요.”라든지 혹은 좀 더 전문성을 원한다면, 아니 실은 그냥 내가 얼만큼 알고 있는지 설명하고 싶다면 제 최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요새는 betcover!!라는 밴드를 가장 좋아하고요, 올해 나온 앨범 중 Pulp의 More는 정말 최고입니다.” 항상 이 시도들은 ‘아 그 그룹을 언급해야 했는데…’하며 아쉬운 채로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경도될 것이고, ‘어 나 그러면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자기소개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인가!

 

마구 적어 내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잠시 오픽(OPIc)이라는 시험을 준비했을 때 자기소개 대본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줄줄이 적힌 글들을 보고, ‘나와 음악은 정말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구나’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자기소개의 속성들


 

여기까지 자기소개란 무엇인지를 정리해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나, 아니면 나를 알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편 이 자기소개라는 것은 불변한 것인가? 초등학생 때는 XX초등학교 몇 학년 몇 반으로 자신을 소개했고, 지금은 XX대학교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앞으로는 이 자리에 XX에서 근무 중이라는 소개가 들어오게 되겠지?

 

지금의 자기소개와 10년 전의 자기소개의 모양은 완전히 다르다. 아 그렇다면 자기소개는 끝없이 수정될 수 있겠군.

 

그럼에도 본질은 그 자리에 머무르며, 변하지 않는다. 우선 내게 지어진 이름이나, 생년월일 같은 것과 출신. 이것들은 정말로 불변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아닌 요소들에 의해 그렇게 정해진다.

 

변하지 않고 남은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러니까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은 무엇인가? 아마도 굳어진 성격이나 습관, 취향 같은 것이 이에 속할 것이다. 그것은 조용함, 조급해지면 이빨로 입술을 뜯음, 재밌거나 우스운 것을 좋아함 같은 것들이다.

 

한편 언젠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소속과 사는 지역, 헤어스타일 같은 외적인 특징일 것이다.

 

또한, 나를 설명하고 싶을 때 그 자신이 어떤 특질을 가졌는지, 악센트가 어디에 붙을지는 내가 설정할 수 있다. 그럼 이건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네?

 

여하튼 자기소개의 요소에는 불변한 것들, 가변적인 것들,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들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정리를 해보면.

 

 

 

불변한 자기소개


 

강민경이라고 태초에 지어진 이름, 2002년이라는 생년, 태어난 지역과 동양인이라는 속성.

 

조용한 편이고, 조급해지면 이빨로 입술을 뜯으며, 재밌거나 우스운 일을 좋아함.

 

 

 

자기소개 (수정 중)


 

경기도 거주

대학교 마지막 학기 재학 중

탈색한 머리를 11개월째 방치 중

 

 

 

별표 친 자기소개


 

★★★★★ 음악감상이 취미

★★★ 언제나 작문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이와 관련된 것을 직업 삼고자 함

★ 뭔가를 읽거나 볼 때, 심지어 들을 때조차 철학적 개념을 잘 다루면(전공 때문인가?) 쉽게 그것이 명작이라 생각함 그래서 최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최고점을 줌


이정도면 충분한 자기소개와 그에 대한 사유가 된 것 같다. 0에서부터 시작한 자기소개가 벌써 590개의 단어로 채워졌다. 12월에 작성해서 그런 것인지, 2026년 연말의 자기소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때 다시 한 번 수정해보길 희망하며 자기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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