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공연은 보고 싶어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긴장도가 높았다. 어른들은 내 성격을 두고 '예민하다'라고 했지만, 예민하다는 말에 담기지 않는 민감하고 피곤한 부분이 늘 함께했다.
오랜 시간 불안과 긴장은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시험을 앞두고 신체는 한없이 나약해졌으며 강박 성향도 있어 같은 일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언제 한 번은 너무 긴장한 탓에 장이 꼬이는 듯한 복통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시험이나 공연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어딘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버스에서 과호흡을 겪은 뒤로는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남들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간다는데 나는 차를 타고 먼 곳을 가야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다가, 대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다가 불안이 극에 달해 집중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후로 공연을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가운데 좌석보다는 통로 가까운 쪽,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 등 내가 괜찮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괜찮지 않더라도 공연이 보고 싶었다. 대학로에서 보는 연극, 라이브 하우스의 스탠딩, 홀에서 보는 연주회, 대극장 뮤지컬, 아이돌 콘서트 등 나는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보다 보면 익숙해질 것 같아서 계속 보러 다녔다. 남들에 비하면 적은 빈도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열심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남들은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 불안과 긴장은 나만의 것이니까.
수많은 공연을 보는 동안 불안해서 집중 못 하는 순간은 있더라도 참지 못하고 나온 적은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들이 나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버티게 만들었다. 불안장애가 심해져서 약을 먹게 되었을 때도 공연을 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약을 먹고 보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붙은 건지 간이 부은 건지 모르겠지만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고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길 몇 차례. 여전히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버스에서는 자려고 애를 쓰고 타국과 언어의 장벽으로 누구보다 긴장한 상태로 공연장을 향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 이제는 아는 긴장과 불안이니 견뎌낼 수 있다.
나는 이걸 애정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법처럼 없애주지는 못해도 힘듦을 극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공연은 보고 싶다,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