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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화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때, 또래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얼굴에 근심이 너무 많아 보이셔서요. 요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평소 같았으면 “아닙니다” 하고 예의상 웃으며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나는 ‘근심이 많아 보인다’는 말에 발이 붙들렸던 것 같다. 동시에 경계심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나는 겁 먹은 염소처럼 “네에에...” 대답했고,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어지는 말들은 사이비 권유에서 흔히 들을 법한 말들이었다. “인상이 선해보이세요”, “혹시 집에서 맏이세요?”, “너무 착하시고 열심히 사시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랄까요?” 나는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간신히 판단력을 부여잡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던’ 그 말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분 뒤 친구와 함께 같은 길을 다시 지날 때,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럼 그렇지”하며 자책했고, 동시에 마음 한켠이 얼얼했다. 그날 만난 사이비 신도들의 수법은 특별할 것이 없었고, 그들 말에 흔들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예외 없이 흔들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왜 말 몇 마디에 그렇게 쉽게 마음이 쏠렸던 걸까?

 

이 경험을 떠올리게 만든 책이 있었다. 바로 이완정의 『외로움의 함정』이다. 이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외로움이라는 정서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파헤친다. 1장에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외로움이 어떻게 함정이 되는지 그 단계들과 특징을 분석하며, 2장에서는 최종 함정인 고립과 자기 방임이 어떻게 생겨나고 왜 위험한지를 다룬다. 3장에서는 청년, 중장년, 노년 각 연령대에서 외로움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설명하고, 4장과 5장에서는 각각 개인과 사회가 고립을 어떻게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서두에서 외로움을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정의한다. 사전적으로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으로 설명되지만, 외로움은 단지 물리적인 고립뿐 아니라 ‘외롭다’고 인식하는 감정과 그 상황이 맞물려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말을 인용한다. “외로움은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과 공유할 수 없는 것, 남과 공유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외로움은 ‘중요한 감정이 연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비롯되며, 저자는 이 지점에서 출발해 그 치유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접근을 시도해나간다.

 

또한 이 책은 외로움을 단지 개인의 심리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그것이 형성되는 사회적 구조까지 짚어낸다. 경쟁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능력주의, 가족 구조의 해체, 디지털 환경의 확장 속에서 우리는 점점 관계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책에서 소개되는 고립된 청년층의 사례는 더욱 무겁게 와 닿았다. 착취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이들은 “나를 받아주는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의 나약함이 아니라, 그들을 연결하지 못한 사회 전체의 실패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 역시 백화점 앞에서 마주친 사이비 신도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외로움이 물꼬를 텄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털어놓고 싶다는 갈망과 그들이 나를 이해해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기대, 돌이켜보면 그것이 외로움의 본질이었다. 거절당하지 않고, 이해받고 싶고, 내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늘어났으며, 그 깊이 또한 더 심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영국은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해 외로움을 국가 정책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뒤엔 일본이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설치하고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뉴스에서도 한동안 ‘은둔형 외톨이’나 ‘쉬었음 청년’, ‘니트족’ 등의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해왔고, 오늘 내가 본 기사에서는 인천시가 외로움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외로움국’이라는 조직을 신설하고, 외로움 지원 플랫폼과 모임,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통합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을 선별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고립과 단절을 사회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은, 외로움이 이제 단순한 개인 감정을 넘어 사회적 재난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꼽는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이 인용된다. “현대 과학은 아직까지 다정한 말 몇 마디보다 더 효과적인 안정제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속 콘텐츠를 소비하고, SNS를 뒤지지만, 정작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짧고 진심 어린 대화임을 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사회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외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의미로 각자 외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능력. 바로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생존 방식일지 모른다.

 

 

* 참고 기사 : 서울경제, “청년·고령층 외로움 잡는다”…인천시, 외로움 통합 지원 정책 기반 마련,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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