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은둔, 고독.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다. 청년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말들이기도 하다. 상담하다 보면 다양한 사연을 접하게 된다. 꿈에서 멀어진 채 반복되는 실패를 겪는 이들, 주변에서 던지는 따가운 말들에 상처 입은 이들, 무엇보다도 안전망 하나 없이 맨바닥에 던져진 것 같은 요즘 세상에, 고립된 삶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외로움의 함정』은 이런 삶의 단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 '외로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단순히 감정적 고립이 아닌 사회적, 심리적 패턴 속에서 조명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던 '고립', '은둔', '내향성' 같은 단어들의 진짜 의미와 차이를 하나씩 짚어낸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이 내향적인 성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향적인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밀집된 환경에선 종종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친구가 있음에도 겉도는 기분을 느낀 적도 많고, 누군가의 시선에 들고 싶지만, 투명 인간처럼 느껴지는 그 괴리 속에서 당황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싫었지만, 이제는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나를 이해하고 나만의 안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외로운 것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사회적 연결이 단절되고,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 없이 고립 상태가 지속되는 데 있다. 즉, 외로움이란 단순한 감정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성'의 유무에 달라지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외로움은 '상황'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핵심은 보편적인 인간 '정서'에 초점을 맞춘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립은 다륻다. 고립은 '상황'이나 '상태'에 초점을 맞춘 단어이다. (p. 67~68)
현대 사회에서 소속감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속감은 단지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넘어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이바지 하고 있다'라는 확신을 주는 감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쓸모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런 역할 속에서 외로움을 덜어낸다.
우리의 생활은 항상 눈앞에서 닥친 소소한 과제와 목표를 가지고 성립한다. (p. 240)
나는 과거 우울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를 겪은 적이 있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단순한 것들이었다. 겨우 일어나 앉고, 주방으로 가서 밥을 해 먹는 것. 지금은 너무도 사소한 일들이 당시엔 큰 과제였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만들고, 그걸 먹고 힘을 내는 나를 보며 성취감이라는 것이 거창한 결과물이 아닌 작고 반복된 일상에서 쌓인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책은 말한다. 인간은 나선형을 그리며 성장한다고. 일시적인 퇴행은 당름 성장을 위한 준비이며, 때로는 의도적인 '퇴행 의식'도 필요하다고.
외로움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그 감정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나오고 싶다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당장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잘 돌보고 관리하는 나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고립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사회는 종종 그 상태를 문제화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불완전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소망을 품게 되었다. 누군가가 고립되어 있을 때, 사회가 그 사람을 향해 "당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성급히 규정짓기보단, 그저 한 겹의 '에어백'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경쟁보다 지지와 응원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 그런 곳이라면 우리는 더 안전하게, 자유롭게 외로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