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일명 ‘바나나우유 이별 썰’.
여자친구가 어느 날 이발을 시켜주고, 같이 목욕탕 갔다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자니 바나나우유를 두 개 들고 나오고, 상설 매장에서 멋진 옷도 사주고, 그렇게 집에 가는 길에 이제 멋있어졌으니 자기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며 이별을 고했다는 이야기다. 성숙한 이별과 잊을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글쓴이의 감정은 물론 사랑했던 사람을 빛내주며 이별을 고하는 여자친구의 마음까지 독자에게 여러 심상을 떠올리게 하며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져나간 글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 누군가 지어낸 ‘주작 썰’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작가 김봉철이다.
김봉철은 30대 중반까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아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책을 독립출판으로 펴냈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도 단순했다. 그 유명한 바나나우유 썰이 픽션이었다니, 그리고 그 비밀을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다니.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中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中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찌질하고, 한심하고, 게으르고, 소심한 면만을 그러모아 글로 엮어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분명히 생명력을 가지고 빛나는 문장들이 있었고, 읽는 이의 마음에 와닿는 진심이 있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를 읽을 때는 그 글들이 모두 진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작가의 블로그를 구독해 두고 올라오는 글들을 꾸준히 읽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봉철의 글에는 인터넷 상의 바나나우유 썰과 같이 거짓(픽션)과 진실들이 마구 혼재되어 독자가 알아볼 수 없게 되어있는 듯했다. 이 사람이 쓰는 글의 어디서부터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궁금해졌다. 바로 이 궁금증 때문에, 그가 독립출판이 아니라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서 단편 소설집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다. 소설이고 허구의 이야기지만 분명히 진실이 상당 부분 있을 것인데, 그게 어느 정도일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독자를 만나는 표제작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부터가 일부러 책에 거짓말을 쓰는 작가와 그를 검증하려는 편집자의 이야기라니. 이 소설집 자체가 진실과 거짓,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있으며, 그 넘나듦에 대한 이야기가 곧 책의 본질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글들과 SNS에서 꾸준히 밝히고 있듯, 김봉철은 독립출판인이며 작가인 동시에 건설 현장의 노동자다.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속 단편 〈무촌 제17구역 - 아마릴리스의 노예〉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아버지의 영화〉는 자신이 겪은 실패의 경험들을 영화로 풀어내는 아버지와 그를 지켜보는 아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대개 허구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다른 세 편이 길어야 20쪽 남짓인 데 비해, 200쪽에 달하는 〈악귀 일기〉는 인생의 밑바닥을 찍으며 큰 절망을 맛보고 이를 계기로 독립출판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펴내기 시작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 자체가 작가의 실제 상황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단편 〈아버지의 영화〉 中
〈아버지의 영화〉에서는 이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 하지 말아야 했지만 했던 실수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런 말들과 그런 실수들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타인의 머릿속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유독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떠오를지 모르는 문장들.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뭐든 더 수월히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때 난 너무 아무것도 몰랐어..."
인생이 이런 아쉬움으로만 가득하다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이것을 인생의 본질로 받아들여야 할까. 순간에 충실하면 좀 나아질까.
단편 〈악귀 일기〉 中
〈악귀 일기〉에서 형섭이 은미에게 떠올려보라고 했던 마음속의 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바다에서 계속 파도가 쳤다.
이 책은 삶의 고통과 실패와 허무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염세적이지는 않다. 인생이 뒷맛 씁쓸한 것들의 연속이라 해도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개인의 사사로운 패배의 역사도 전승될 가치는 있다. 두렵고 또 겁도 나지만 문장이 진실인지 확인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수밖에는 없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이런 부분에서 나는 위로받는다. 그게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의 매력이다.
나는 한국 현대문학을 자주 읽지 않는 편이다. 이유라면, 소재는 참신한데 막상 읽고 나면 크게 남는 게 없다거나, 문장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감각적인 데만 치우친다거나, 전반적인 감성이 안온·무해·다정함에만 머무른다는 편견이 있어서다. 물론 이는 내 좁은 독서 경험에서 비롯된 선입견일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철학서나 관심 있는 인물·주제의 수필, 혹은 세계적으로 검증된 고전이나 명작들을 읽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은, ‘아, 이것이 진정한 문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영화〉 속 화자가 아버지가 만든 영화를 보고 문득 ‘이런 게 진짜 영화가 아닐까?’라고 느낀 순간처럼 말이다. 작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필체는 간결하고 유려해 술술 읽힌다. 이 깔끔한 문장에 작가 특유의 약간의 ‘아저씨 감성’과 아웃사이더적인 결이 더해지면서, 내가 그동안 거부감을 느꼈던 한국 현대문학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이 책의 특별함이다. 비유하자면 장기하의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솔직하고도 묘하게 중독적인 울림과 닮아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글이란 단순히 진실을 밝히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글은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며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들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한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봉철의 글이 그러했듯, 꾸며진 이야기와 실제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이건 진짜일까?’를 끊임없이 묻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남기느냐일 것이다. 결국 문학은 허구일지라도 읽는 이의 삶 속에서 새로운 현실감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현실 그 자체보다도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이 꾸며진 이야기일지언정 우리의 삶을 더 ‘진짜’처럼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예술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