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라 했던가, 그 말은 비단 외부의 것들에 한정되진 않는 듯 하다. 살아가며 말 그대로 학문에 관해 배우기도 하지만 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자체를 우리는 늘 배워나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배워나가야 하는 부분에 바깥 세상이 아닌 내부의 세계, 즉 내 자신도 포함이라는 점이다. 내가 나로써 살아가고 있는 이상,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큰 오산이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듯 나 또한 변해가는 나 자신에 적응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은 때로는 과신이 되어 오히려 나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독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점을 또 한번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취미를 통해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물과 친하지 못한 아이였다. 배울 새도 없이 금방 그만두었다며 엄마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오는 어릴 적 수영 수업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일년에 한두 번 가던 워터파크에서도 잘 놀기는 했지만 조금만 물에 들어가 있어도 금새 시퍼래지는 입술과 덜덜 떨려오는 몸에 오래 놀지 못하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엔 손과 발이 유독 찬 수족냉증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의 온도가 더욱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다. 그럴 때면 춥고 힘든 마음에 역시 난 물에서 놀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커서는 물놀이에 갈 일이 한참동안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 때, 가족들과 떠난 하와이 여행에서 정말 오랜만에 물놀이를 하게 되었다. 뜨겁고 더운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하와이의 날씨에 시원하게 출렁이는 바닷물이 너무나 시원해보였다. 먼저 물에 들어가 시원하다며 어서 들어오라는 부모님의 손짓에 설레는 마음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바닷물에 발 끝을 담그자마자 정말 너무나 차가운 나머지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바닷물이 이토록 차가울 수가 있나? 놀란 마음과 함께 앞으로의 여행 동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다행히 여행 동안 어떻게든 놀기는 했지만 금새 추워지는 몸은 여전히 힘들게 느껴졌었다.
하와이 여행 이후로 나는 한번 더 물놀이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수영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항상 물놀이를 갈 때마다 깊은 물에서도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며 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수영을 하지 못하면 왜인지 놀 수 있는 부분에서 한가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호텔을 놀러가도 수영을 하지 못하면 그 좋은 호텔 수영장에서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바다를 놀러가도 다리만 조금 담갔다가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점점 물놀이가 재미 없어지고 더 물을 피하게 되는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예전에 수영을 배우셨던 아빠가 하와이 바다에서 바다 거북이와 함께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 자유롭게 느껴졌고, 동시에 부러워졌다. 수영은 나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잠시, 나는 한동안 수영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난 물에 친숙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줄줄이 수영을 배울 때도 꿋꿋히 나는 물이 무섭고 몸이 차서 수영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여러차례 거듭된 실패에 나의 신념은 더욱 더 확고해져 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수영을 배우고 있다. 벌써 두 달이나 말이다. 사실 거창한 계기로 수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은 것도, 생각이 바뀔 만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도전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신혼여행 때문이었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나와 예비신랑은 바다가 있는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의미 있는 여행인 만큼 난 정말 ‘잘’ 즐기고 오고 싶은 마음이 아주 컸다. 그런데 휴양지에서 잘 놀기 위해서는 수영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갑작스럽게 그 동안의 걱정을 뒤로하고 수영장에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 수영장에 갈 준비를 위해 예쁜 수영복과 수모 그리고 수경도 장만하였다. 새로운 장비를 사는 일은 늘 즐겁기에 설레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문득문득 올라왔다. 물에 들어갔는데 너무 추우면 어떡하지? 난 물에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데 물이 무서우면 어떡하지? 난 몸치인데 운동에 아예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걱정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유튜브에 수영장 매너 등을 검색해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영장에 가는 첫날은 다가왔고, 난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걱정으로 가득했던 수영 수업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차가울까 걱정했던 물은 여름이라 그런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고, 추워서 벌벌 떨릴까 우려했던 몸은 움직이니 오히려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첫 날이라 많은 것을 하진 못했지만 시원한 물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왜인지 동심으로 돌아간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쌓여가던 수영 수업은 어느 덧 두달차를 바라보고 있다. 비록 자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 동안 작지만 큰 변화들도 많았다.
물에 뜰 수는 있을까 걱정하던 나는 자유영과 배영을 킥판 없이 할 수 있어졌다. 물론 아직 너무나 어설프지만, 부력 도구의 도움 없이 물에 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앞과 뒤 어느 쪽으로 누워도 물에 둥둥 뜰 수 있다니! 정말 뿌듯했다. 또 한가지 발견은 내가 의외로 물을 많이 무서워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수영 강사님도 ‘물을 무서워하지 않으시네요’하고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꽤나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깊은 물에 들어가면 또 다르겠지만, 수영장 정도의 깊이에서는 빠져 죽을 수 없다는 점이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거기다 시원한 물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보면 중력을 거스르고 자유로워진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자유 하나를 되찾은 기분이 들곤 했다.
물론 여전히 걱정되는 것들이 남아있긴 하다. 인공 수영장과 바닷물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더 차갑고 깊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추우면 수영을 해서 몸의 온도를 좀 높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바다가 기대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잘 안다는 믿음으로 계속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이 자유로움을 난 아직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잘 파악하는 것이, 또 잘 파악하고 있다는 믿음을 깨트려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취미가 생기면 수영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을 통해 느꼈던 점만은 앞으로의 삶에서 도전하기 두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