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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보면, 기꺼운 초인사를 치르곤 한다.

 

출판 편집과 관련된 책장을 어슬렁거리다, 『편집 후기』라는 직관적인 제목에 끌렸다. 이어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앞표지에 적힌 부제와 뒤표지에 나열된 문학평론가들의 추천사를 보고는, 두더지처럼 두 덫에 순순히 숨어갔다.


책을 휘리릭 넘겨보니 책갈피 하나와 북클립 하나가 꽂혀있었다. 책갈피 앞면에는 ‘MOBY DICK’이라는 문구 아래에, 고래와 배 한 척이 마주하는 그림이 있었고, 그 뒷면에는 ‘BORN TO READ’라는 구절이 적혀있었다(물론 앞뒤 개념은 반대일 수 있다). 이전 대출자의 것인지, 그보다 앞선 독자의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적어도 한 사람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으리라는 것만은 짐작해 볼만했다.


‘읽기 위해 태어났다’는 낯간지러움은 분명 충실한 독서인에게 어울렸다. 비단 문구뿐만이 아니라, 그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상품을 모르고는 구매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름 있었다. 또 책의 색지와 갈피가 비슷한 색상이었는데, 그 센스는 책에 갈피를 한두 번 꽂아본 솜씨가 아니었다. 물론 적독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컬러링은 의도가 아닐 수 있다.


실제이든 착각이든, 그럼에도, 이 아늑한 우연은 제법 반갑다. 아쉽다면 그 책갈피를 순간적으로 꺼내 들어 어느 부분에 포개어져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 정도였다. 한 독자가 독서를 그만둔 시점인지, 다음 독자에게 보여주고픈 부분에 꽂아둔 선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객쩍이 후자라 믿었다.


북클립의 경우에는 그 자취가 달랐다. 183쪽과 184쪽에 걸쳐 꽂혀있었는데, 역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한 꼭지의 마무리가 인상적이어서인지, 혹은 다른 꼭지가 마음에 들어 그 시작을 표시한 것인지는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북클립을 책갈피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부연하자면 183쪽은 ‘책 속에 숨기’의 끝이고, 184쪽은 ‘우리말은 아름답지 않다’의 시작이다. 두 꼭지 모두 흥미로우나, 이 또한 후자로 믿음 추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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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립은 제자리 그대로 꽂아두고, 책갈피에는 신세 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완독할 때까지 이용했다). 읽으면서 책갈피를 만지작대다 보니, 문득 몇몇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편집자가 되었을까, 혹은 지망생일까. 나와 같은 학과일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까. 편집 관련 책을 단순 호기심으로 읽는 경우는 드물었다. 애초에 책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야 눈독 들일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급기야는 대출 목록까지 찾아보고 말았다. 아주 과거에는 수기로 대출 기록을 작성하였기에 대출자의 흔적을 살필 수 있었을 테지만, 온라인으로 그 실황을 확인하는 오늘날에는 관리자 외에는 쉽사리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대출 횟수 정도는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나를 포함해 총 3회 빌려졌다. 23년에 출간된 이래로 곧장 도서관에 꽂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딘가 미진함이 남는다. 하물며 3회라 해서 꼭 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한 사람이 2회를 빌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 사람이 각 1회씩 대출하였다고 믿었다.


실은 세 가지를 믿고 싶은 것이다. 하나는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 다른 하나는 첫째 독자가 남겨둔 책갈피를 둘째 독자에 이어 셋째 독자인 나에게까지 이어지고, 각 독자가 자신만의 흔적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관행. 또 하나는 언젠가 이 책과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나리라는 기대.


우연을 믿음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우연을 곱씹으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연장선에서 셋째 독자인 나 역시 흔적을 하나 남겨본다. 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앞선 독자들과는 다소 다른, 나만의 표시로, 누군가의 우연을 바라면서.


여담이 길었다. 『편집 후기』에 대한 후기는 다음을 기약하자. 머지않아 이 책을 다시 들춰볼 테니까. 그러나 넷째 독자가 되고 싶진 않기에, 한 권 구매하련다.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만만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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