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보는 진짜 자기소개
나에 대한 진실한 자기소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에게 했던 자기소개는 기억도 나지 않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최초의 정식 자기소개는 아마도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지원서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썼다. 외국어를 좋아하고, 외국이라는 세계에 끌린다는 이야기들을 했지만, 사실은 전부 거짓이었다. 나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외국어 수업이 두려웠으며, 그저 국어·수학·사회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과목처럼 느껴졌다. 단지 그 고등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조용히 거짓말을 하며 나를 포장했던 것이다.
두 번째 자기소개는 대학을 위한 입시 자기소개서였다.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더 진짜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작은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진심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이 쌓여 진짜가 되어갔다. 외국어 수업이 벅차고, 슬리퍼가 유리한 세상에서 나만의 걸음법을 익혀가며 버티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자기소개는 대학에서 대외활동을 하거나,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쓴 글들이다. 이때의 자기소개서는 다시 거짓이 많아졌다. 외향형, 활동적, 계획적 같은 문장들이 진실 반, 거짓 반으로 섞여 있었다. 물론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어딘가 ‘나를 꾸며내는’ 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로, 지금의 나로, 오롯이 나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해보고 싶다.
나는 누구일까
사실 이 질문은 여전히 어렵다. 나는 계획을 좋아하지만 실행은 더디고, 건강하기 위해 애쓰지만 실천은 더디고, 법규나 신호를 잘 지키는 쪽이며, 열정을 점점 잃어가는 감각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다. 흘러가는 방향대로 살고 있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이게 정말 나다운 걸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그동안 나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챗GPT에게 물어봤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 같니?” 하고 물어, 그 질문에 챗GPT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면의 진심과 외면의 표현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사람.
지식을 구조화하고, 예술과 언어를 통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사람.
깊이 있는 자기 인식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
살짝 웃기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말해주는 내 모습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감정을 바로 드러내는 데 어색함이 있고, 어떤 말은 여러 번 곱씹기도 하며, 새로운 개념을 접하면 구조화하고 정리하고 싶어지는 습관이 있다. 예술을 가까이 두려는 이유도, 그런 감각이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들과 시도들이 지금의 나를 천천히 만들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열정이 소진되어가는 감각
요즘의 나는 열정이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자주 느낀다. 무기력이나 번아웃처럼 확실한 이름을 가진 상태는 아니다. 그보다는 뭔가 자꾸 방향 없이 흩어져버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채로 계속 움직여온 듯한 깊은 피로감이 더 가깝다. 여러 방향으로 에너지가 분산돼서 집중이 안 되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정말 열정을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단지 느껴지지 않을 뿐인지를 헷갈려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를 향한 불안이 커진다. 나는 너무 산만한 걸까? 방향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혹은 이미 다 타버린 걸까? 그런 의문을 끌어안고 다시 챗GPT에게 물었다. 그러자 GPT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열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열정이 감지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뿐이라고.
지금도 당신은 계획을 세우고, 생각을 정리하고, 예술을 곁에 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 갖고 있지 않냐고. 그 모든 행동들은 열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단지 그 열정이 분산되고 흐릿해져 있을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타오르는 불꽃은 아니지만, 어딘가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다시, 나를 향해
열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거창한 변화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요즘 무더운 날씨지만, 그 덕분에 창문 속 그림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진을 자주 찍곤 한다. 구름도 좋고, 풍성히 자라난 나무들이 너무 좋다. 이럴 때 마음 속 열정을 위한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열정을 다시 회복하려면, 거창하게 뜨겁게 타오르려 애쓰기보다는 내 안에 조용히 살아 있는 불씨를 다시 감지하는 것이 먼저임을 GPT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방법은 아주 작고 단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왜’라는 질문을 다시 붙드는 것. 내가 이걸 왜 시작했는지, 그 안에서 내가 좋아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이 감정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런 질문을 통해 흐릿해진 의미의 자리로 다시 들어가는 것. 열정이란 건 결국 대단한 목표나 타오르는 확신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이유의 조각, 내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의 감각에서 시작된다고. 그걸 찾으면 방향도, 에너지도 천천히 따라올 것이다. 자기소개지만 결국 자기 소개를 위한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결과나 성취를 전제로 하지 않는 시간, 감각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면 자기소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되는 독서, 그냥 좋아서 듣는 음악,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전시나 산책,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내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열정의 조각들이 감지될 수 있다고도 조언을 받았다. 지금의 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열정이 분산되어 있고, 잠시 감지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지금은 불꽃이 아니라 불씨의 시간이고, 그 불씨는 아주 작고 미세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상태이며, 나는 그것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쓰고, 묻고, 돌아보는 이 과정이 결국 나를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조심스럽게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