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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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영화 <이사>의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항상 '전학생'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의 관심, 새로운 환경, 그 정신 없는 순간 넘치는 활기를 동경했다. 지금은 갑자기 무언가 바뀐다고 하면 한숨부터 나올 뿐, 그때 가졌던 맘이 철저히 내가 처해 본 적 없는 환경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는 걸 안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어린 아이로서 나를 보호해주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나를 가두는 환경에서 벗어날 방법이 오직 이사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는 어린 시절 품었던 이사에 대한 환상을 반추하게 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어릴 적 3인칭의 시점으로 종종 봐 왔던 가정의 이사가 아닌,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이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환경의 변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일이 계시처럼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과는 달리 선택할 수 없는 문제가 사고처럼 다가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사의 순간 앞에서 어린 시절의 환상은 흩어져 버렸다.

 

 

 

어른의 세계와 함께 크게 흔들리는 아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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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어린 소녀 '렌'의 가정이 다소 불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쉴 새 없이 말하는 렌과 달리 엄마와 아빠는 서로 바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눈을 맞추지 않고 렌에게 말을 걸지도 않는다. 렌은 아빠가 묻는 구체적인 중화소스 레시피를 엄마에게 확인하려 하지만, 엄마는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한다. 유일하게 조명이 드리운 자리에 위치한 렌의 앞 어두운 자리에 앉은 부모님의 관계에는 이미 그늘이 드리웠다는 걸 렌은 아직 모른다.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테이블이 화면을 찌르는 듯 미장센으로 불편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운데, 아빠가 먼저 식탁을 떠난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산책을 다녀온다는 아빠의 모습은 부자연스럽지만 엄마는 붙잡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이다. 아빠의 이사가 단순한 출장이나 일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렌은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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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소녀 렌은 아빠의 이사가 뜻하는 바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아빠와 특히 가까웠던 렌은 엄마가 언급하는 '새 출발'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안타깝지만, 렌이 둘의 관계를 봉합하려 하고 엄마와 렌의 새 출발을 거부하면 할수록 이는 역효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 이야기에 불과했던, 뉴스에 불과한 줄 알았던 방화 사건은 렌의 이야기가 되고 친구의 가정사는 렌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학교에서 여러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렌이 친구들에게 적개심을 사고, 충동적으로 알코올 램프로 불까지 지른 일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부모의 관계와 가정 환경이 미친 영향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불을 이용한 연출이다. 이것은 가정의 균열이 렌에게 가져다 주는 불안과 관계의 변화를 표현하는 메타포로, 이사에서 이혼으로 가는 부모님의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렌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렌의 아빠는 이사를 간 집의 근처에서 잡기를 태우며 렌이 그 불에 다가갈 수 없도록 지키려 하지만, 결국 렌은 스스로 불을 지르고, 큰 불을 지르는 축제의 의식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타오르는 큰 불을 바라보며 세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의 꿈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받아들인다. 어른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아픔으로부터 자녀를 완전히 분리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시도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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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은 초반에 아빠가 불 속으로 던져버린 가족 사진을 꺼내 불을 끄려 애쓰지만, 결국 불을 다 끄기 전에 엄마가 있는 사진의 절반은 전부 타버린다. 해당 대목에서는 초반에 렌의 시점에서 다소 희망적으로 보였던 아빠의 귀환이 결정적으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인해 불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후 렌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제게 위협적으로 구는 것을 해결하고자 알코올 램프를 들고 휘두른다. 이후 선생님이 들어와 자신을 말리자 램프로 직접 불을 낸다. 불을 내는 일이 있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렌의 다소 충동적이지만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알코올 램프로 불을 붙인 선택은 결국 교실 전체에 불을 내며 문제를 크게 키운다. 이 부분에서 렌이 원하는 이상적인 결말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렌이 축제에서 구경하는 큰 불은 겉잡을 수 없이 깊어져만 가는 관계의 골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작은 불을 보면 순간적으로 불이 커지기 전에 꺼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큰 불은 마주하는 순간 그저 압도될 뿐이다.

 

렌은 불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읽는다. 그 후 머지 않아 부모님이 물 속으로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져 가는 광경을 본다. 축제의 순간에서 한 시절의 장례식이 되어 버린 듯 타오르는 배가 무너지듯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완전히 몰락해 버린다. 렌이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환한 얼굴로 "축하합니다!"라고 외치는 렌은 정말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홀가분해진 것일까. 이 부분의 시퀀스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그리지만, 그 어떤 시퀀스보다도 현실감이 넘쳤다. 가슴으로 렌이 느끼는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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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사>에서 그리는 어린 아이의 심리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조형이 작품이 주는 의미를 언급하고 싶다. <이사>를 반드시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존재로 보완되지 않는 부모 자식 간의 불완전한 관계 묘사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다움을 이해하지 못한, 어른의 시선이 짙게 묻어난 작품에는 지나치게 조숙한 아이들이 종종 등장해 거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렌은 조숙한 아이임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렌이 어른과 어른을 연결해주는 보완적인 존재나 어른의 잘못을 일깨우는 도구적인 존재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미성숙하고 어린 렌 또한 그러하다. 사실 잘 들여다 보면 영화에서 비춰지는 다소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부모의 모습은 이미 오랫동안 서로에게 쌓인 앙금을 풀지 못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렌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겠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써보지만, 그럴수록 렌이 보이는 행동은 고집에 지나지 않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물론 이 또한 서글픈 노력의 결과다. 그럼에도 셋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헛발질을 할 뿐이다. 미성숙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은 그 어떤 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법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렌과 렌 부모의 관계에서 특히 주시할 점은, 처음부터 이혼 위기가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되었다면 렌의 발상과 행동이 문제의 결정적인 열쇠로서 작용해야 하지만, 렌은 가면 갈수록 오히려 부모가 겪는 내적인 갈등과 상응하는 고민만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렌은 둘 사이의 관계에서 불가분한 존재이면서 어른의 관계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설명이 지연되며 거듭 상처를 받는다. 렌은 설명 없이도 이해하는, 어른들이 바라는 조숙하고 편리한 아이가 아니다. 렌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둠으로써 렌의 마음을 우리는 어른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느끼며 이로써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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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혹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가 부모에게 갖는 의미를 의심하고 무력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하루빨리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떠밀리듯 어른이 된 아이들을 안쓰럽고 대견하게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이런 아이들의 마음과 그 무게를,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는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세계가 재구축되는 순간 느껴야 했던 렌의 성장통을 절감했기에 엔딩을 보면서 울지도, 웃을 수도 없었던 이 마음을 극장에서 직접 느껴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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