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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는 호랑이와 함께한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수호신이자 벽사의 존재, 권위와 힘의 상징이다. 우리 민화 작호도(鵲虎圖) 또는 호작도(虎鵲圖)라고 불리는 그림 속 호랑이는 조금 서툴고 어설프다. 권위를 품었으나, 그 눈빛과 몸짓은 사람 냄새가 났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호랑이는 결코 절대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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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까치와 호랑이

 

 

이처럼 무서운 존재조차 해학으로 비틀어 풀어낸 것이 바로 우리 민화의 정신이다. 권력자들의 얼굴은 무섭고 장엄했지만, 민화 속에서 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어색하게 웃는 호랑이가 되었다. 이것은 두려움을 우습게 바꾸고, 눈물 뒤에 웃음을 숨겨놓는 해학의 본질이자 민중 미학의 결과이다.


작호도에는 크게 세 가지 영물—까치, 호랑이와 소나무—이 등장한다. 소나무는 발음 그대로 송(松), 곧 칭송한다는 뜻을 품었다. 변치 않는 푸름처럼 굳센 의지와 장수를 상징했고, 그림 속에서 까치와 호랑이는 길상과 벽사의 기운을 품었다. 신당에서는 서낭신이 천지사방을 돌보는 사이, 미처 손길이 닿지 못한 곳에 까치를 보내어 호랑이에게 신탁을 전했다고 해석하는 산신도의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민중은 호랑이를 권력과 탐관오리로, 까치를 민초로 보아 권력층을 조롱하고 대항하려는 민중의 소망으로 읽었다. 그렇게 그림 속의 세 존재는 결국 하나의 도상을 이룬다. 그들은 길운과 수호, 그리고 삶의 균형을 바라보는 마음을 나타내며 권위를 풍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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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직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를 화려하게 장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도 이 오래된 도상의 숨결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인간의 형태를 한 채로 혼을 노리는 악귀들이 존재한다. 이를 막기 위해 대대로 세 여성 헌터가 노래의 힘으로 혼문을 만들어 악귀들을 물리쳐 왔고, 오늘날 그 임무는 5년 차 최정상 걸그룹 헌트릭스로 이어진다. 무대 위에 선 헌트릭스는 세상의 구원자이자 아이돌이다. 그들의 노래는 혼문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었고, 그 힘은 곧 세상 모든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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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와 함께 어둡고 괴기스러운 악귀가 뒤섞인 두 개의 세상에서 더피(Derpy)와 서씨(Sussie)는 우스꽝스럽고 사람 냄새 나는 존재들이다.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어쩐지 인간적인 허술함을 담았다. 더피는 작호도 속 호랑이가 지닌 이중적 상징성과 맞닿아 있다. 더피는 귀마의 하수인인 진우를 따르는 영물로 현실 세계와 악귀 세계를 오갈 수 있는 동시에, 귀엽고 엉뚱한 모습으로 서씨와 한 쌍을 이루어 루미와 진우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바람을 깃에 싣고 소식을 모아 전하며, 둘은 사건의 숨결을 함께한다.


진우는 권력과 배신, 그리고 뼈마디처럼 스며든 자기기만으로 얼룩진 과거를 끌어안은 존재이다. 그는 루미와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가까워지지만, 귀마가 그의 진짜 과거 —자신만을 위해 거래했던 욕망—를 상기시키자 결국 루미를 배신한다. 그 배신은 작호도 속 호랑이가 지닌 위엄과 동시에 어리숙함을 드러내는 양가적 모습과 닮았다. 헌트릭스를 위협하는 힘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적 약점으로 흔들리는 존재였다. 진우와 루미가 마주한 것은 결코 거대한 권력 따위가 아닌, 본인의 얼룩진 약함이었다.

 

진우는 400년 거슬러 피로 얼룩진 과거를 끌어안고, 권위의 자리에 서면서도 그 속에 균열을 감추었다. 그의 욕망 저편에는 끝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약함이 숨어 있었다. 더피가 오랜 시간 진우를 따른 것도, 그의 약함과 균열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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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는 악이 도래한 남산 위에서 숨겨왔던 것들을 토해냈다. 숨기고 싶었던 진실, 상처와 약점을 음표로 바꿔 세상에 던졌을 때, 진정한 혼문이 피어난다. 작호도의 까치는 서낭신의 심부름꾼이었다. 신의 눈과 귀가 되어 신탁을 전했다. 더피와 서씨는 정보 전달자를 넘어 진우와 루미를 이어주며 본인의 약함을 마주 보게 만든다. 마음의 엮임은 완벽하고 빛나는 부분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흠집투성이의 진심과 부끄러운 약점들까지 모여야만,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하나가 된다. 그것이 곧 서낭신의 신탁이었고, 작호도 속 까치가 전하던 소식이었다.


민화는 집안 대들보에 걸리거나 문짝에 붙여졌다. 온 가족, 온 마을이 함께 바라보며 복을 빌고 재앙을 막아내고자 했던 공동체의 약속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혼문 역시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민화가 그랬던 것처럼, 노래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부를 때 가장 큰 힘을 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하려던 이야기는 여기에 있다. 강하고 화려한 권위 뒤에 숨은 흔들림, 그리고 그 흔들림마저 끌어안아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마음의 합일.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흔들리지만, 그 약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가장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But now I’m seeing all the beauty in the broken glass

하지만 이제는 보여 깨진 유리에도 담긴 아름다움이

The scars are part of me, darkness and harmony

상처는 나의 일부, 어둠 그리고 조화

 

What It Sounds Like 中

 

 

상처와 어둠조차 조화의 일부이며, 부서진 것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노래는 결국 민화가 전해준 진실과도 닮았다. 두려움과 권위를 웃음으로 비틀고, 서로의 약함을 숨기지 않을 때, 그제야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진다.

 

작호도의 호랑이와 까치를 모티브 삼은 더피와 서씨도 바람과 노래, 웃음과 눈물 사이 경계 위를 걷는다. 헌트릭스가 선보이는 ‘What It Sounds Like’의 가사처럼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속삭인다. 그것이야말로 작호도가 수백 년을 지나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부서진 유리 조각 속에서조차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 오래된 해학의 힘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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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게임도리
글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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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정말 제 인생 작품이거든요.. 이유를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었는데,
제 마음을 온전히 글로 써주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흔들리지만, 그 약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가장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정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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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13:07:5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