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적도 없는 것 같다. 정신 건강 드라마,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고, 나 또한 상담을 여러 번 받았었고 정신과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졌다. 나도 정신과 마음, 생각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도 어려운 주제였다.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보고 나와서도 아직은 어려운 대상으로 느껴졌다. 병을 감추기보다는 꺼내어 보이고자 하는 솔직한 고백을 들은 느낌이었다.
공연장을 찾기 전까지 나는 막연히 무거운 주제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예상보다 더 진솔하고 깊이 있는 감정의 언어로 다가왔고, 병을 앓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불안과 결핍,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는 인간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흔한 극적 기승전결이나 회복의 드라마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 키키가 관객과 마주 앉아 토크쇼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연인과의 관계, 정신병원 입원, 치료와 재활,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에 이르는 서사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어떤 절정이나 해소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파도처럼 이어진다. 사실 그래서 이 반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 공연이 ‘완치’라는 단어를 경계한다는 점이다. 키키는 “이제는 나 자신을 덜 미워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문장은 치유의 종착지가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진 하루’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흔히 요구하는 극복 서사나 감정적 환희와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형식적으로도 이 공연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 복잡한 무대 장치 없이 최소한의 오브제와 영상, 조명으로 무대를 채우며, 관객의 집중을 키키의 내면으로 유도한다.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표현할 때 키키가 내뿜는 화염방사기를 대신하는 등장인물과 마이크 거치대, 책과 여러가지 소품을 대신하는 마이크, 토크쇼 무대와 재현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조그맣고 동그란 원형 오브제까지 다양한 소품과 무대 장치보다는 최소한의 물건으로, 등장인물들이 대신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음악은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감정을 유연하게 끌어올린다. 토크콘서트 형식에 녹아든 넘버들은 키키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언어이자 키키를 둘러싼 주변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클리셰 부분들이 있지만, 우렁찬 노래에 힘껏 연기하는 등장인물을 보면, 키키와 주변인의 마음이 극대화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이 공연이 다루는 내용이 워낙 섬세한 정신의 영역이다 보니, 서사 중 일부 장면은 다소 뚜렷한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키키의 질환 형성과 관련된 특정 경험은, 개인적으로 거북하게 느껴졌고, 그것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처럼 제시되며 감정을 유도하는 방식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물론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용기 있는 시도이며,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라는 목적도 이해된다. 하지만 경계성 인격장애는 단순한 외상이나 트라우마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단편적인 이미지로 병을 환원시키는 방식은 오히려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 사이의 경계는 매우 좁은 만큼, 관객의 다양한 감수성을 존중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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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감정을 얼마나 넓게, 그리고 깊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이다. 이 공연은 어떤 감정도 숨기지 않고 꺼내 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관객에게 상처를 자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상처를 함께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물론 공연의 일부 표현 방식에는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느꼈지만, 그 진심은 명확했다. 이 작품은 완전히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여전히 ‘연습 중’이라고 말한다. 키키가 자신에게 하는 그 말은, 우리 각자에게도 필요한 말일 것이다. 이 작품은 나를 이해하게 하고, 나 아닌 누군가의 고통에 손을 내밀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더 오래 하게 만든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