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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함께 머무르고, 저무는 사랑

영화 <두 사람>을 보고

by 정주원 에디터
2025.06.13 16:29

 

 

영화 <두 사람> - 함께 머무르고, 저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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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영화의 포스터에 삽입된 문구는 인선님과 수현님의 사랑을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바닷가 앞에서 손을 잡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포스터 속 두 할머니가 가진 정체성은 이주노동자, 이민 1세대, 그리고 레즈비언이다. <두 사람>은 가장 낯선 땅에서 서로를 만나 가장 깊은 사랑으로 남아 여생을 보내는 두 ‘할머니 레즈비언’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낯선 나라인 독일로 이주 후에 반평생을 함께 살아오며 가정을 꾸린 수현님과 인선님의 종교와, 사랑, 결혼과 가족, 소수자와 평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80분간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으며 각자 어떤 일을 하며 따로, 또 같이 함께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기혼자였던 인선님은 독일에서 간호사인 수현님을 만나고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지내온 두 사람은 70대가 된 지금,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를 만들어 교육을 하고, 한국에 가서는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에 대한 강의를 하며 글을 쓴다. 함께 있을 때에는 같이 밥을 차려먹고, 바다를 거닐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고 과일을 깎아먹는 노년 부부의 모습을 한 채로. 이렇게 이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는 소수자의 모습들이 묻어있다.

 

 

 

여러 소수자성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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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성소수자. 두 할머님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소수자성에 대해 말한다. ‘소수자’의 소수가 수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을 포용하지 않을 때마다 밖으로 내몰리는 소수자들은 이제 정말 ‘소수’처럼 보인다. 독일로 이주를 와 간호사로 근무하던 수현님과 독일에 정착해 결혼을 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인선님은 이민 1세대이면서 이주노동자이다. 이런 두 사람이 교회 수련회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영화같다. 운명적인 만남임과 동시에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없을까?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지 않을까?


사회는 여러 소수자들을 지우고, 우리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의적, 타의적으로 하나의 섬이 된다.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여러나라에서 추진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큰 규모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지만 ‘할머니 레즈비언’, 은 여전히 생소한 존재이다. 인선님도 시니어 퀴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영화 속에서 말씀하신다.


영화는 ‘비가시화’되어온 사람들이 정면에 나서 목소리를 내는 용기 있는 순간들을 주목한다. 동성애가 죄악이라 말하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인선님은 남편과 이혼한 순간, 수현님이 인선님에게 꽃을 꺾어 마음을 전한 순간. 서로를 선택하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라는 팻말을 가지고 시위에 나가는 순간. 이러한 순간들은 자신을 구성하는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해 직접 반기를 든 것이고, 반박지은 감독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내 안의 여러 가지 정체성이 충돌하는 순간, 더 옳다고 믿는 가치와 더 사랑하고픈 순간을 찾아 용기를 내는 두 할머니의 모습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아낸다.

 

 

 

함께 머무르고, 함께 저물어가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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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소수자성을 알면서도 부딪히고 극복하려는 용기를 내게 만든 것이 사랑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가족들은 여전히 왜 조용히 살 수 있음에도 강의를 하고, 신문과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지에 대해 눈치와 핀잔을 준다. 두 노년의 여성이 함께 사는 이유에 ‘사랑’이 있음을 상상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이 존재하고, 둘 사이를 그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괜히 특별한 행동을 해서 해를 받거나 눈에 띌까봐 손을 잡지 않고 다녔다고 말하던 두 할머니는 인선님의 건강이 악화되며 법적 보호자가 필요해지자 2022년 늦은 혼인신고를 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서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행복해하던 두 할머니는 법적으로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사랑을 이어나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아플 때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고,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당연한 마음이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이들은 이제 부부이다.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를 설립한 것도, 간호사 경력을 살려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도, 70대의 나이에 무지갯빛 피켓을 들고 퀴어퍼레이드에 나가고, 한국에서 이주민과 이민자와 성소수자로서 강의를 하는 것도, 모두 두 사람이 함께 낯선 나라에 머묾과 동시에 저물어 가는 삶을 함께 보내는 과정이다. 불평등에 시위하고 투쟁하는 삶은 그들에게 슬픔과 분노의 외침에서 이제는 일상의 한 조각이 되었다. 영화에서 역시 함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행위보다 그들이 함께 퍼레이드에 참가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더 주목한다. 두 사람이 결국 혼인신고를 하는 것 역시 그들이 가진 여러 소수자성을 위한 투쟁임과 동시에 김인선과 이수현 개인의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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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이 시점에 독일에서 동성결혼을 하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정상성이라는 허상에 가려져 흔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든 동성결혼을 원하는 퀴어들이 있고, 결혼을 위해 해외로 이주를 하는 퀴어들 역시 존재한다. 동성애자들은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것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쟁취해내야 한다. 2024년 개봉한 한국영화 <딸에 대하여>에서는 동성애자인 딸이 노년에 혼자 남을 것을 두려워하는 엄마와, 같이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계속 함께 있었다는 말을 던지는 딸의 동성 연인이 등장한다.


이런 사회에서 성소수자, 이민자, 그리고 여성으로서 두 사람의 사랑이 더 넓게 퍼져나가기를 바랐다는 반박지은 감독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두 사람의 삶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이뤄냄으로써 사랑과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함께 머물다 보면 함께 저물어가야 하는 순간도 오기 마련이고, 인선님과 수현님은 사랑으로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80분의 짧은 영화는 서로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고 함께 있어 주는 그게 섹스라며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입맞추는 인선님과 수현님의 모습으로 끝을 내린다. 각자가 각자의 삶을 꽉 붙잡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놓치지 않고 함께 살아오며 사랑한 모습들은 관객마저 유쾌하게 만드는 블루스다. <두 사람>은 노년의, 동성애자의 사랑이라고 특별할 것 없이, 함께 있음 자체에 사랑을 느끼고 모든 경계에 걸쳐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는 영화이다. ‘life unrehearsed’라는 영어 제목처럼 쉽게 떠올릴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던 노년 레즈비언 커플의 인생을 담은 영화라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다. 어떠한 삶은 보여지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세상의 모두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사랑으로 늙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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