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생각할 때, 나는 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이끌린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슈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클래식은 나도 모르게 ‘죽은 자들의 예술’로 여겨왔다. 그들의 유산을 듣고, 해석하고, 다시 재연하는 장르. 하지만 앙상블블랭크의 < 작곡가는 살아있다 IV >는 그 무의식적인 믿음을 깨트리는 경험이었다. 클래식은 과거의 언어이기 이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작곡가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연주자들이야 당연히 살아 있으니까 무대에 설 수 있는 거겠지만, 작곡가? 순간적으로 나는 그 문장에서 ‘작곡가는 죽어 있다’는 내 편견이 드러나는 걸 봤다. 그건 낯설고도 묘한 충격이었다. 클래식을 들을 때 나는 언제나 오래된 것들을 향유하고 있다는 기분이었고, 그 음악들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감동에만 머물렀지, 누가 지금 이 순간 그 음악을 쓰고 있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공연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봤을 때, 놀라운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무대에 오른 곡들 중에는 나와 동년배인 작곡가의 초연 작품도 있었다. 이건 단순한 ‘공연 관람’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역사적 장면의 일부분이 되는 일이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설렐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설렘은 곧장 공연장 안의 낯선 긴장감으로 이어졌다.
첫 곡이 시작되었을 때, 연주자가 악기 위를 스치고, 문지르고, 때때로 두드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게 연주의 일부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독일 현대음악의 거장 헬무트 라헨만의 < Pression >이었다. 전통적인 선율은 철저히 회피되고, 현악기라는 도구 자체의 물리성을 탐색하는 곡. 그제야 나는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동시에 클래식에 대한 나의 기준도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이후로도 연달아 연주된 곡들은 매우 실험적이었다. 특히 앙상블블랭크의 공모에서 선정된 두 젊은 작곡가, 남병준과 주시열의 곡은 혼란스럽고도 흥미로웠다. 남병준 작곡가의 곡은 방향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방황, 명확하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소리들이 겹겹이 쌓이며 어떤 불완전한 나를 투영하는 듯한 음악이었다.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세계로 청중을 끌어들이는 감각. 정의할 수 없기에 진짜라는 인상을 남겼다.
주시열 작곡가의 ‘관점’을 주제로 한 현악 삼중주도 흥미로웠다. 연주자들이 서로 마주 보며 긴장감 넘치는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 다른 결로 움직이는 그 장면은 마치 음악이 아닌 무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융합이 아닌 대립, 조화가 아닌 긴장. 그 안에서 새로운 해석이 자라났다. 나는 무대 위에서 마치 음악이 공간을 밀어내며 생기는 틈, 그 여백 속에 음악 아닌 것 같은 음악이 태어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티아스 핀처의 < On a Clear Day >와 최재혁 음악감독의 < Straight to Heaven >에서는 드디어 ‘선율’과 ‘정서’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는 음악들이 이어졌다. 맑은 날의 투명한 정서를 담은 듯한 핀처의 곡은 여운이 길게 남았고, 최재혁의 곡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장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장대한 인상을 남겼다. 소리로 구성된 한 편의 서사.
그날의 마지막 곡은 바흐의 < Orchestral Suite No.2 > 였다. 앞선 실험적인 현대음악들을 들은 직후여서인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바흐의 음악은 나에게 매우 익숙하게 들렸고 내가 알던 클래식이었다. 고전의 구조적 아름다움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이처럼 고전과 현대를 나란히 배치한 구성은 전통과 실험이 경쟁이 아니라 대화의 관계임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공연 도중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조용히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 울린 휴대폰 벨소리. 그 소리에 순간적으로 몰입이 깨졌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공연은 연주자와 작곡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도 공연을 완성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다음에는 더 단단한 관객으로서 무대와 마주하고 싶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나는 이번 공연을 통해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는지를 느꼈다. 장르는 흐름이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와 하위 장르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중 어떤 건 생소하고, 어떤 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 자체가 클래식을, 더 나아가 문화 전체를 살아 있게 만든다.
문화 향유자로서 내가 늘 경계하려는 것이 ‘편식’이다. 내가 아는 것만 보고 듣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 세계에만 머문다면 더 넓은 감각은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나의 경계를 넓히는 경험’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감정까지 껴안고, 모호함마저 감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태도가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다.
예술은 끝나지 않는다. 어떤 예술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은 여전히 살아있다. 동시에,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예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현재진행형의 예술. 나는 그 현장을 목격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클래식을, 새로운 감동을 만났다. 앙상블블랭크 < 작곡가는 살아있다 IV >는 나에게 클래식이 ‘현재의 음악’임을 알려준 뜻깊은 경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