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고 콘서트홀을 찾는 길은 늘 망설임과 설렘 사이에 있다.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발길을 음악회로 돌리는 이유는 음악이 주는 특별한 힘 때문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러시아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일리야 슈무클러.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의 화려한 성과로 주목받은 그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레퍼토리로 무대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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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바흐: 토카타 D장조
J. S. Bach: Toccata in D major, BWV 912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A장조
F. Schubert - Sonata in A major, D. 664 (Op. posth. 120)
I. Allegro moderato
II. Andante
III. Allegro
리스트: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中 '장송곡'
F. Liszt - "Funérailles" from "Harmonies poétiques et religieuses", S. 173 No.7
- intermission -
드뷔시: '영상' 제1집
C. Debussy - "Images", book I, L. 110
I. "Reflets dans l'eau"
II. "Hommage à Rameau"
III. "Mouvement"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M.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이날의 프로그램은 시대와 작곡가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바흐의 토카타 D장조로 시작된 공연은 명료하고 화려한 곡의 구조가 돋보였다. 일리야의 연주는 바흐 특유의 엄격함을 섬세하게 전달하면서도 곡의 자유로운 선율 속에서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어지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A장조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으로 청중을 감싸 안았다. 특히, 2악장 Andante에서의 선율은 마치 저녁 노을 속 고요한 풍경을 연상시키며, 관객들에게 잠시 일상의 무게를 잊게 만들었다.
리스트의 장송곡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강렬한 시작과 함께 곡은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리스트 특유의 화려한 기교 속에서도 일리야는 곡의 서정성과 내면적인 울림을 놓치지 않았다. 웅장한 저음의 울림이 홀 전체를 가득 메울 때 느껴지는 압도감은 디지털 시대의 음원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공연장의 매력을 일깨워주었다.
후반부는 드뷔시의 ‘영상’ 제1집으로 시작되었다. “Reflets dans l’eau”에서의 반짝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연주는 청중들에게 시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했고, “Hommage à Rameau”는 깊은 고요와 우아함으로 홀을 채웠다. 빠르고 경쾌한 “Mouvement”에서 일리야의 탁월한 테크닉이 빛을 발하며 전반부의 감성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회 전체를 압도하는 대미를 장식했다. 각 악장이 서로 다른 풍경을 그리듯 펼쳐졌고, 특히 “키예프의 대문”에서는 거대한 종소리와 같은 장엄함이 느껴졌다. 공연장의 울림이 관객들을 곡의 중심으로 끌어들였고, 마지막 음이 끝난 후 객석은 기립박수로 가득 찼다.
이번 일리야 슈무클러의 리사이틀은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퇴근 후 피곤함 속에서도 공연장을 찾은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은, 공연이 끝난 뒤에 더욱 선명해졌다. 리스트의 장송곡에서 느낀 웅장함과 고양감은 이 경험이 디지털 시대에도 공연장이 지닌 특별함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음악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주가의 해석과 관객의 공감, 공연장의 울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경험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다.
앞으로도 퇴근길의 선율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줄 것을 기대하며,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을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