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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제17회 리옹 비엔날레 《Le voix des fleuves(강의 목소리)》가 개막했다.

 

국가, 물리적 거리,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예술이라는 무형의 점으로 귀결되는 총체의 순간을 포착한다. 비엔날레는 리옹 전역의 미술관, 옛 창고를 개조한 전시장, 고급 호텔의 내부 정원 등 제각각 특정한 본래 기능을 가진 아홉 군데의 장소에서 펼쳐진다. 가능한 한 모든 방면에서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리옹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전시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늘 그렇듯 꼭대기 층에서부터 시작해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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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파랑색이 온 벽과 바닥을 이은 커다란 홀에 게르를 연상시키는 나무 골조가 커다랗게 짜여 있다. 압도되는 분위기에 당장 전시장 안으로 달려가려는 걸 지킴이가 막아서곤, 신발을 벗고 들어갈 것을 요청했다. '암, 카펫 관리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 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요청의 저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국 출신의 여성 작가 Grace Ndiritu는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조각, 회화, 사진, 도예 등 매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구현한 그의 작업은 날 것의 흥미와 욕구를 담고 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카펫을 느끼며 자유로이 전시장을 누비는 경험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해 더욱 풍부한 관람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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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의 작가들이 어우러진 2층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Tohe Commaret의 비디오. 눈이 아플 만큼 명도 높은 화면에 '파랑'을 중심색으로 설정한 영상 작품은 냉소와 비극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푸른빛 스타킹에 푸른빛 원피스, 푸른빛 아이섀도우에 푸른빛 마스카라를 칠한 여성은 거친 남자친구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 간다. 응답 없는 주변인의 인터폰에 정처없이 거리를 떠돌던 여성은 풀밭에 멋대로 누워 파란 스타킹을 벗어버리고 손끝과 발끝으로 풀을 만지며 편안하게 숨을 고른다.

 

다큐멘터리와 판타지의 경계를 구현하는 그의 작업은 주로 대본 없이 배경 설정만으로 진행된다. 카메라의 역할은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을 꾸밈없이 표출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가장 투명한 매개일 뿐이다. 이로써 작가는 우리를 가로막는 현실의 면면을 들추고 우리를 가두는 옷을 벗어던질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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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초입의 넓은 공간에는 커다란 회화 작품들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1997년생 여성 작가 Ludivine Gonthier의 작업으로, '요즘 세대'의 면모를 그림에 가감없이 녹여냈다.

 

작가는 자신과 실제 주변 인물의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해 자기 삶의 기쁨과 슬픔, 열정과 우정, 기억과 희망을 그린다. 과감한 색채의 혼합과 거침없는 선으로 표현주의를 계승하는 동시에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해 가는 젊은 세대를 묘사한다.

 

넓은 캔버스에 투영한 작가의 세상은 훨씬 더 넓고, 복잡하고, 아프다. 현실과 신화의 분위기를 넘나드는 작업에 범상치 않은 서사를 상상하는 한편, 이스터에그 마냥 속속들이 숨은 귀여운 이미지를 찾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또 한 가지, 캔버스보다 3cm 정도 더 크게 설정된 직사각형 백색 조명은 작품의 유니크함을 배가하는 큐레이터의 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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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개관 40주년 기념 전시에 이어 리옹 현대미술관은 굵직한 전시를 연달아 선보였다. 비엔날레 특성 상 전시 작품 및 작가 선택은 여러 기관과 전문가의 합작이지만, 공간 설치와 관람 동선 구성 등 실질적인 구현을 위한 '전시 제작' 단계는 미술관 자체의 역량이다.

 

전시 관람 경험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작품 자체보다 기억에 남는 건 특정 전시실의 전경, 조명 설정, 가까이 배치된 작가들 사이의 연관성이었다. 이러한 제작 요소들이 기억에 남는다는 건 이번 전시도 '잘 만든 전시'였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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