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교환 학생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 곳에서 나와 아주 닮은 친구를 발견했다. 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미대생이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기숙사 라운지에 앉아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예술에 대해 노래했다. 모국어가 같지 않은 우리는 삽시간에 친해졌다. 나는 어쩌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이 친구와의 대화가 더 재미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러한 종류의 편안함의 이유를 모색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문화를 향유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그들은 남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 깃들어있는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제 3의 눈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내가 조금 특이한 옷을 입어도, 바보 같은 춤을 추고,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도 모두 아름다운 예술로서 바라봐준다. 나는 그들 옆에서 한껏 자유로울 수 있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하게 보일 나의 예술성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다.
그는 특이하게 생긴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렸다가 지웠다가 반복했다. 연필을 움직일 때마다 좋은 소리가 났다. 나는 옆에서 마케팅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같이 온라인 쇼핑을 했다. 그리고는 같이 음악을 들었다.
학교를 떠나는 날, 나는 그와 포옹하며 울었다. 너가 없이 어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지 별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큰 상실감을 느꼈다.
최근에 나는, 전형적인 한국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의 예술성을 잃어간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뉴욕에서 만난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며 책을 읽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 내면에 숨어있는 예술성과 순수함을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를 찾았으면 좋겠다. 일종의 도움 닫기라고나 해야할까. 그것이 문화를 향유하는 친구, 즉 나에겐 교환 학생 시절 만났던 친구가 될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 한 권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좋은 노래 한 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담아 쓴 편지가 그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그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이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든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궤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내가 가진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특별한 행위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편지 같은 건 그저 종이일 뿐이에요. 태워버려도 마음에 남는 건 남고, 가지고 있어도 남지 않는 건 남지 않지요.”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