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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도시가 담긴 정물들의 모습 [미술/전시]

by 이홍비 에디터
2023.06.17 00:38

 

 

정물화라는 장르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사물을 소재로 삼는다. “정물화(靜物畵)”의 ‘정(靜’)은 고요하다, 조용하다, 잠잠하다를 의미하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정물’을 정지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는 무정물이라 정의한다. 아주 납작하게 말하면, 정물화는 ‘특별한 구석’ 하나 없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사물을 주제로 삼고 있기에 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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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화미술관에서 6월 30일까지 진행하는 도시기획전 《정물도시(Still-Life, Still-City)》는 정물화를 통해 역동적인 도시를 표현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 도시의 풍경이 드러나는 정물화들은 여느 현대도시를 표현하는 작품들처럼 어딘가 차갑고 딱딱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지긋이 시선을 고정하고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정물도시’는 살갑다.

 

 


조나스 우드와 탐 웨셀만의 현대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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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우드, <무제(새로운 식물들)>, 2009

 

 

조나스 우드의 과감한 정물화는 특유의 그래픽적 요소가 돋보이며 대부분의 묘사를 생략했다. 심지어 제목에서 지칭하는 ‘새로운 식물들’ 역시 생략된 것 같다. 식물처럼 보이는 어떤 것도 묘사되지 않았으며, 흔히들 식물과 관련된 색상으로 떠올리는 녹색은 화면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제목과 연관 지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관람자는 화병을 떠올릴 수 있고, 하얀색 꽃이 꽂힌 것을 표현하고자 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관람자가 이 상상과 유추를 시도할 수 있는 까닭은 현대 미술에서의 추상화 기법의 발전과 현대의 디자인 기술, 기법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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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웨셀만, <후지 국화가 있는 정물화(두 개의 레이어)>, 1992

 

 

탐 웨셀만의 <후지 국화가 있는 정물화> 역시 동일하다. 얇은 금속판으로 굵직한 드로잉 선을 표현한 듯한 웨셀만의 작품은 현실적이지 않다. 우드의 작품보다는 덜하지만, 입체감도, 세부적인 묘사도 과감히 생략되었으며 심지어는 배경도 생략되었다. 작품의 주재료인 금속은 하나의 얇은 판과 같은 이미지가, 한 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2023년에 이 작품을 감상하는 현대인들은 웨셀만의 작업을 그리 낯설어하지 않는데, 우리는 캔버스 대신 벽면이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며 캔버스와 물감이 아닌 새로운 재료가 사용된 작품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조나스 우드와 탐 웨셀만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대 작가들의 시선이다. 우드의 디자인적 특징이 가미된 간결한 표현법,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요소들, 웨셀만의 주재료가 된 금속과 캔버스의 부재 등은 현대 사회의 모습과 맞닿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두 작가의 ‘도시정물’에 낯섦을 느끼지 않는다. 우드와 웨셀만이 포착한 도시성이 작품의 표현 방법에, 작품의 재료에 투영되었다.

 

 

 

한국 동시대 작가들이 짚어낸 현대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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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나, <오렌지색 안락의자>, 2004

 

 

《정물도시》는 반가운 한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도 포함하고 있다. 권용래, 김병호, 정연두, 박미나, 이기봉 작가의 작품은 정말 겹치는 것 없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내포한다.


박미나 작가의 <오렌지색 안락의자>는 《오렌지 페인팅》 연작에 포함되는 작품으로 ‘오렌지색’ 작품 제작을 요청받은 뒤 색의 범주에 궁금증이 생겨 그려졌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색에 특정 번호를 붙인다. 물감, 페인트의 경우도 그렇지만, PC, 스마트폰과 같이 전자기기에 표시되는 색상 역시 표기법에 따른 특정 코드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오렌지색’은 몇 번일까? 색상 코드가 어떻게 될까? 박미나 작가는 오렌지색(정확히 말하면 오렌지색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색상들)을 사용해 현대 산업구조와 색채 체계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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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래, <영원의 불꽃 – 파르마 핑크>, 2019

 

 

권용래 작가의 작품은 도시의 숨겨진 속성들을 화이트큐브로 불러들이는 마법 주문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는 스테인리스 금속판 조각들에 반사되는 빛으로 화면을 빼곡히 채워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스테인리스라는 재료 자체가 주는 차가운 속성은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배가되어 관람자에게 전달되는데, 이는 꼭 도시 풍경을 표현한 듯하다. 이리저리 반사되는 빛들이 일렁이며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어느 빌딩 숲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동시대 작가들 역시 제각각의 방법으로 현대사회의 이면을 포착하고 이를 전시장으로, 관람객 앞으로 끌어내고 있다. 정물도시는 현대의 정물화의 이상적인 모습의 한 면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글의 서두에서 ‘납작하게 말하면, 정물화는 특별한 구석 하나 없다’고 했지만, 사실 정물화는 그리는 이, 화가의 가장 사실적인 일상을 투영한다. 그러니까, 작가들의 삶과 이어져 있는 대상 또는 소재들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따라서 작품 속 정물은 시대상을 담게 되고, 어쩌면 훗날 이를 역추적해서 해당 정물이 작품 제작 시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왜 그림의 주제로 등장하였는지를 따라가게 하는 키(key)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의 정물화는 이미 전통적인 정물화의 범주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본문에서는 담지 못했지만, 도시의 소리를 재현하는 작품, 물속을 헤엄치는 책으로 가시영역 밖을 표현하는 작품들은 기존의 정물화와는 다른 방법을 선보인다. 이러한 작품이 ‘정물화’의 장르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 모습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작품들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영역으로 끌고 와 우리의 인지 영역을 넓혀주곤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정물도시를 통해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현대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익숙해져서 간과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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