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두었다. 기대감이 없는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이런저런 모양의 소리는 기분을 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이름 모를 기분 좋은 노래들 뒤로, 기어코 화면을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목소리가 나왔다. ‘Lianne La Havas-Bittersweet’. 익숙한 이름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기시감이 일었다.
난 노래의 가수 명보다 제목을 기억하고, 외국 노래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노래들을 담아둔 함을 쭉 내려보다가 반복해서 뜨는 이름에 ‘이게 이 사람 노래였어? 이것도?’하며 놀랐었다. 그때도, 이번에도, 그의 목소리는 귀가 먼저 알아봤다.
사로잡히고 보니 또 그의 노래라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듣고 있던 플레이리스트는 수십 번을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의 노래들로 대체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노라면 긴 고민 끝에 ‘Wonderful’을 꼽을 것이다. ‘Wonderful’은 어느 시간대, 어느 기온, 어느 장소에서 들어도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목과 같이 경이로운 소리로 가득 찬 음악은, 사모하는 것들의 아렴풋함을 상기시킨다.
Did the world get a little bit colder
(세상이 조금 추워졌나요?)
…
Did the heart grow a little bit harder
(마음이 조금 강해졌나요?)
…
But wasn't it kind of wonderful
(전에도 꽤 훌륭했는데, 아닌가요?)
비단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 모든 아름다움의 본질은 희소성에 있는 것 같다. 현재는 과거를 빛나게 하고, 이별은 관계를 소중하게 하며, 존재는 소멸하기 직전 가장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돌이킬 때, 그것이 비추는 아름다움은 허상일지라도 실체가 있는 것 마냥 마음속 깊이 박히고 기억된다.
‘Wonderful’은 이러한 아름다움의 성질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움은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모든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는 없다. 평범하고 추잡한 것들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발견되고, 그것을 쫓느라 지나간 것들이 또 언젠가 다른 아름다움으로 추구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의 경이로움은 그것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내지는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을 수반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지닐 때가 아니라 그릴 때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리앤 라 하바스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Wonderful’이라면,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단연코 ‘Fairytale’이다. 정말 동화를 듣는 양 목소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놓쳤던 부분을 다시 듣고 싶어서, 좋았던 부분을 다시 듣고 싶어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듣고 싶어서, 끝없이 재생하게 된다.
평화로운 음으로 철저하고도 따뜻한 보호의 안팎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안정감을 준다. 보호를 할 수 있다는 강인한 확신을 주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평온한 믿음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느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든, 노래는 현실을 보다 좋은 허상처럼 느껴지게 한다.
허상이 아닌 현실을 쫓기 시작할 때, 성장은 실감된다. 허상과 현실이 서서히 전복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현실과 함께 오는 실질적인 책임감은 성장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암흑 속에 묻어두기에 허상은, 너무 밝다. 대신 그것은 현실과 유연하게 섞일 수 있다. 허상인지 현실인지 따질 여지를 두지 않은 채 당장, 한순간의 공기를 전환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Fairytale’을 듣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온다.
그 외에도 리앤 라 하바스의 곡들은 계속 찾아 듣고 싶은 노래들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인‘Good Goodbye’가 바로 그 몇 년 전, 그의 노래인 줄도 모르고 좋아하던 노래이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와의 이별을 그려내는 곡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는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Good Goodbye’라고 반복되는 구절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녕한 안녕. 평안을 진심으로 바라는 듯한, 세심하게 신경 쓴 작별 인사.
이렇게 세심한 이야기를 공기처럼 뿜어내는 그의 노래는 숲과 같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숨통을 트이게 하는 기분 좋은 목소리. 훌쩍 올라온 더위에 떨쳐지지 않는 텁텁함을 리앤 라 하바스의 노래가 가벼이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